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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일상/book 2019. 7. 19. 22:53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머리가 없는 여인)/막스 에른스트/이모션 북스>
Entraînée par le silence, une porte s'ouvre à reculons.
침묵에 인도되어 문이 반대편으로 열린다.
살바도르 달리 외에 이만큼 아방가르드한 예술가가 있다는 사실은 책을 주문하려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작년보다 책은 덜 읽고 있는데 어쩐지 요즈음 더 이성을 잃고 책을 주문하고 있다=_=) 여하간 막스 에른스트가 기본적으로 화가라는 것도, 이 작품이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된 삽화집이라는 것도 책의 첫 장을 열어젖히고 나서야 알았다. 책의 제목부터가 대단히 실험적이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La femme cent tête)」 또는 「머리가 없는 여인(La femme sans tête)」이라는 중의적인 언어유희.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프랑스어로 원문이 적혀 있다는 점. 그리고 오른편 페이지는 오로지 삽화(揷畵)와 번역이 한국어와 영문으로 적혀 있다.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악상(accent) 부호를 눈으로 좇으며 소리내어 읽다보니, 완독까지 채 세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이상의 「오감도」만큼이나 난해한 글이기 때문에 서사(敍事)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작가 본인이 단테의 「신곡」을 근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고 했던 만큼 선과 악, 빛과 어둠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인식을 환기(喚起)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에셔(Escher)의 판화를 연상시켰던 막스 에른스트의 삽화들은 알쏭달쏭하면서도 비장(悲壯)한 느낌이 가득했다. 이전부터 프랑스어로 된 그림책을 읽어보고 싶어도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선뜻 사질 못했는데, 우연한 계기에 좋은 작품과 새로운 예술가를 만나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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