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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일본 대중문화는 대체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 길을 걷다가 어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는데, 특정한 대목이 어떤 노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떤 대목이 떠올랐던 건가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다른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 들었던 한 일본 가요를 떠올렸다는 걸 깨달았다. 쓰는 악기나 기법이 살짝 비슷하면 가사와 멜로디가 완전히 달라도 또 다른 음악을 연상시킬 때가 있는 법이다. 마침 이날은 우연히도 작곡과 교수의 수업을 들었었다. (요즘 이런저런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다.)
“음악이란 비의미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음악 수업을 들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음악이란 무엇이며 작곡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수업을 듣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수업에서 말하길 사람은 너무 구체적인 것들을 24시간 옆에 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사람은 추상적인 것 안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단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듣는다고 해보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도나우 강이 시시각각 지줄대는 소리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도나우 강의 출렁이는 빛과 물의 흐름이 추상적인 선율로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슈베르트의 ‘송어’를 듣고 있다고 해서 송어가 푸드덕푸드덕 헤엄치는 소리나 꺽꺽 물속에서 숨쉬는 소리를 듣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 들을 요량이었다면 녹음이라는 편리한 방법이 있다. 음악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은 재빠르게 움직이는 송어의 쾌활함과 민첩함을 선율로 전달해서 누군가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가령 하루종일 아무런 백색소음 없이 정보 전달에 충실한 무미건조한 말만 귀에 내리꽂힌다면 너무 삭막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숨을 좀 돌리려고 소파에 뻗어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Eroica)을 틀어 놨더니, 막상 군중 위에서 군림하는 영웅의 쩌렁쩌렁한 육성이 들린다면 이 역시 너무나도 피곤하고 짜증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다시 일본 대중문화 이야기. 아니, 그냥 대중문화 이야기. 대중문화는 ‘소비’되기 위한 것이고, 고급문화는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기에 필요하다는 교수의 이야기. 시각예술이라면 오래전부터 집요하게 이것저것 찾아다니곤 하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그만큼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이처럼 쉽게 나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잘 ‘안다’고 말하기 위해서 문학이나 역사,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에 대해서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예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느끼기’만 하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만큼은 한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교수의 말에 약간 뜨끔하긴 한다.
다시 정말로 일본 대중문화 이야기. 결국 내가 찾던 곡은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애니메이션의 OST곡이었다. 이 곡은 예전에 봤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드라마로 이어지고, 또 다른 가수들의 음악으로 연상 작용이 이어진다. <오렌지 데이즈>, <런치의 여왕>, 사잔올스타즈.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영상과 주인공들, 스토리, 멜로디. <런치의 여왕>을 보며 좋아하게 되었던 다케우치 유코의 소식을 작년 아주 오랜만에 접했을 때에는 모든 맥락이 뚝 잘려나간 급작스런 비보(悲報)였다. 이 연상 작용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가려나?
끝에 다다른 연상 작용은 ‘편협함’에 대한 생각. 우리 사회는 외양적으로 선진국임은 분명한데, 왜 이렇게 점점 열린 생각, 열린 마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끼는 걸까. 사잔올스타즈의 여러 곡들—夏をあきれめて、涙のキス、愛しいエリー—을 들었다. 일본은 저작권 문제에 깐깐하고 어지간한 일본곡의 음원이 우리나라에 풀렸다고는 해도 사잔올스타즈의 곡을 듣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무튼간 내가 일본의 어느 가수의 어떤 곡을 듣는다고 말한들 귀기울여 들어줄 만한 사람은 생각해 보면 주위에서 손에 꼽는다.글쎄 요새는 편견이라는 화살의 초점이 또 다른 이웃국가로 옮겨간 느낌이다. (아마 또 언젠가는 타깃이 바뀔 것이다.) 문화적인 자신감인지 옹졸함인지 모르겠는 게, 국소적인 이슈에는 끈질기게 매달리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제3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거시적인 노력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는 격앙된 말은 참 많은데,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에 대한 차분한 이야기는 놀라우리 만치 없다. 구체적인 것들은 가득하고 추상적인 것들은 완전히 빠져 있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마침표는 가득하고 쉼표는 사라진 세상에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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