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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촌항으로여행/2021 봄 원산도 2021. 5. 3. 10:37
숙소 주인이 내게 추천을 해준 곳이 원산도였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는 천수만 방면의 해안가를 거닐어볼까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온 나를 괴이하게 여긴 주인과는 그 이튿날이 되어서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왜 읍내가 아닌 고남면까지 내려왔는지, 왜 그 늦은 시간에 서울을 출발했는지 등등. 바다를 보러 왔지만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내 말에 주인이 바다를 볼 거라면 원산도를 가볼 것을 권했다. 다만 차를 끌고 오지 않아서 도보로 둘러보기에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갸웃한다. 원산안면대교를 도보로도 건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 출발을 준비했다.
영목항은 그리 크지 않은 항구다. 남쪽으로 뻗은 꽤나 가파른 언덕길이 부두와 곧장 맞닿아 있다. 다만 원산안면대교로 이어지는 해안가가 비교적 근래에 항구로 조성된 듯하다. 여하간 원래 항구의 기능을 하던 오래된 부둣가는 협소하고 언덕 허리춤에 띠를 두른 마을도 그리 크지는 않다. 다만 안면도의 남쪽 끝이라는 지리적인 특수함 때문에 이곳을 기점으로 하는 버스노선이 몇 대 있다. 영목항의 버스정류소에서 읍내로 나가는 버스의 시간을 확인하면서 이날 내게 할애된 시간을 가늠해본다. 그에 앞서 태안에서 서울로, 또는 안면도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의 시간표를 체크한다.
처음에는 원산도라는 작은 섬을 안면도와 잇기 위해 이렇게 어마어마한 현수교를 지은 건가, 하고 의아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처럼 보령까지 이어지는 해저터널이 뚫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달라진다. 안면도까지는 태안군에 속하지만 이 다리를 건너 원산도에 이르면 여기서부터는 행정구역이 보령으로 들어간다.
남해만큼 해안선이 복잡한 이 일대는 크고 작은 섬들이 안면도와 원산도 일대를 들쑥날쑥 에워싸고 있다. 효자도처럼 사람이 살고 배가 드나드는 섬도 있는 반면, 대부분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돌섬 또는 모래섬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찾을 가치조차 없어 보이는 저런 섬들이 쓸쓸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순간, 섬 옆에서 바늘로 비집고 나오듯 수면 위로 올라온 가마우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헤엄꾼인 가마우지는 차디찬 봄바다에서 연거푸 긴 잠수를 감행한다. 뭍쪽을 바라보면 화력발전소인지 공장인지 높은 굴뚝을 여러 개 거느린 삭막한 건물이 이질적인 풍경을 그린다. 마찬가지로 보령항 방면을 바라보면 언덕에 가까운 야트막한 산들이 선두에 진을 치고 있고, 그 뒤로는 꽤 높은 산등성이가 굵직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원산도로 내려온 이후로는 초전항 방면으로 약간 걸었는데, 지도에 바다로 나타난 밤섬 일대는 바다가 아닌 매립지였다. 지금은 거주공간으로도 논밭으로도 쓰이지 않는 듯했다. 다시 남동쪽으로 길을 틀어 원산도 해수욕장까지 내려가보기로 한다. 숙소 주인이 무슨 생각에서 바다를 보려면 원산도를 추천한 건지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도시를 떠나왔다는 자체로 후련하기도 하다. 원산도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지는 않지만 꽤 길게 뻗은 곳이어서, 일정 내내 나를 뒤따라온 양떼구름만 아니었다면 햇빛 쨍쨍한 바다를 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역시 탁트인 물덩이를 앞에 두니 마음이 누그러진다. 서해답게 동해와 달리 모래 위에 조개껍데기며 해초들이 어수선하게 널부러져 있어 잠시 앉아 있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바닷바람이 아직까지 매섭기도 했고.
원산도 안에서도 유일하게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점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길로 선촌항까지 올라가면 원산도에서의 짧은 산책은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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