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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과 보령 사이여행/2021 봄 원산도 2021. 4. 29. 13:05
오후 6시 20분 안면도 행 버스가 출발한다. 3시 20분에 예정됐던 약속을 마치고 모처럼만에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탓에 주로 기차역을 이용하다보니 버스터미널을 이용할 때마다 늘 길을 헷갈린다. 안면도로 가는 버스는 센트럴시티 터미널에서 타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경부 영동선 터미널에서 헤매고 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반포의 좁다란 진입로를 지나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경부고속도로 위에 올라탄다. 먹구름이 낀 답답한 날씨다.
태안의 천리포나 만리포는 가본 적이 있지만, 안면도까지 내려가본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에 없는 듯하다. 보령의 대천해수욕장도 가보았지만 천수만 쪽으로 올라가볼 생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지도 위에 나타난 태안의 모양은 조금 독특하다. 서해에 면한 충청도의 절반 가량을 이 태안이라는 지역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위아래로 길게 뻗은 안면도는 이러한 울타리꼴을 그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둥글둥글하게 생기거나 별 모양을 그리는 남해의 섬들과는 다른 모양새다. 그리고 태안의 서쪽 대부분은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생각해보면 서울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자연 경관이 보존된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에 태안으로 향했다. 즉흥적인 결정이라고 하기에는 남해 일대에 여행할 만한 곳을 계속 오래 전부터 물색해 왔기 때문에 바다 여행에 대한 구상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4월 마지막주가 돼서 어느 정도 일정에 여유가 생기면 시원한 남해 바다를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현실은 1박도 녹록치 않아 저녁에 출발하는 일정으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지만. 비록 홀가분히 먼 곳으로 떠나지는 못했지만 외딴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도착 후에 여러 옵션을 고려해볼 수 있는 태안 대신에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안면도를 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안면도는 다시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안면읍과 고남면. 고남면은 안면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안면도 전체면적의 채 5분의 1도 안될 만큼 작은 구역이다. 나는 안면도에서 다시 고남면으로 향했다. 꽃지가 가까운 안면도 읍내 일대는 내가 찾는 조용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남면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저녁 7시 반이 되면 끊겨서 택시를 이용해야 하지만, 숙박비는 안면읍내에서 드는 것보다 줄일 수 있다. 밧개, 옷점, 불무. 시골에 오면 순우리말이어서 정감간다고 하기에도 생소한 지명(地名)들이 자주 보인다. 저 이름들은 언제부터 내려오는 이름일까 떠올려본다.
서울에서 잘 지내다가도 종종 이곳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 답답함이 단지 서울이라는 공간 때문인지, 아니면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간관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모두일 것이다. 그저 눈 앞에 푸른 풍경이 펼쳐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위협적으로 운전하는 차량들, 교통체증, 볼륨을 낮추지 않고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쓰는 사람들, 붐비는 거리,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때로 말할 수 없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일단 가깝고도 먼 곳으로 공간을 옮겨오기는 했는데, 그 이상 어디로 향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늦은 밤 가볍게 맥주를 마신 뒤 이윽고 노곤함의 중력 안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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