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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의 일기: 여우비와 별자리Vᵉ arrondissement de Paris/Janvier 2022. 1. 31. 20:15
# 어제보다 바람이 많이 불지만 오늘도 맑은 날씨다. 하늘 위 구름도 빠르게 흩어진다. 도서관 대신 이른 아침 카페로 갔다. 지난 주 배웠던 것들을 복습하고, 이번 주에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는 수업들의 계획표도 다시 한 점검한다. 이번 주 두 개의 수업이 새로 열리는데, 하나는 게임이론 다른 하나는 문화 변동에 관한 내용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 한 단과대 안에 열린 수업이다. 기본적으로 이곳 수업에서 토론이 많이 요구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읽어야 하는 논문의 양도 점점 늘어간다.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다.
카페를 나선 뒤 지난 주 드라이 클리닝을 맡겨둔 세탁소로 향했다. 니트는 완료됐는데 셔츠는 아직 다림질을 안 했으니 오늘 중 나중에 올 수 있겠냐고 한다. 오늘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수업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내일 다시 들르겠다고 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마리라는 학생을 만났다. 이전에 학교 투어를 함께 했었는데 뒤늦게 기억이 났다. 캐나다 퀘벡 지역에서 왔던 여학생이다. 먼저 아는 체를 해주어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불문학 박사과정에 있다고 했고 이름도 이때 처음 알았다. 프랑스어로 말할 때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하다. 어제도 피카소 박물관에 가서 의식적으로 프랑스어로된 해설을 듣고 읽었는데, 어휘가 비슷해보여도 영어와는 구문(構文)이 완전히 다르다.
# 오후 수업을 들으러 밖으로 나섰을 때 바깥은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소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버스를 5구에서 14구로 넘어와서 보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개 개어 싱그럽다. 공원에는 비가 왔는지 안 왔는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요일에 진행되는 두 수업은 모두 만족스럽다. 고령화 문제에 관한 첫 수업을 진행하는 AB 교수는 상당히 딱딱하고 유머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아는 것들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해서 좋다. 오늘은 무슨 열의에서였는지, 수업 도중에 두 차례나 풀오버를 벗고 흰 반팔 셔츠를 입고 수업을 이어갔다. (한 번은 내가 질문을 한 다음이어서 속으로 당황했다.) 기본적으로 경제학 수업이기는 하지만 경제사적인 내러티브가 균형 잡히게 반영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연금 제도라는 개념을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느낌이다.
두 번째 수업은 프랑스 재무부에 소속되어 있는 AD 교수로, 젊고 유능하고 늘 흔쾌하게 질문을 받는다. 다만 오늘은 허리에 복대를 두른 것을 보니 척추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아마 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 수업은 거시경제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EU라는 독특한 연합체제를 염두에 두고 진행된다. 또한 프랑스 정부의 여러 대차대조표가 활용되고 이와 관련해서 질문과 토론이 오가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실무적인 느낌도 받는다. 저번 주는 이렇게 두 개 수업을 연달아 들으려니, 대학교 시간표가 아닌 고등학교 시간표를 소화하고 있는 것 같아 녹초가 되었는데 오늘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듯하다. 두 수업 모두 집중이 잘 되었고 재미도 있었다.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보니 찌뿌둥함도 떨칠 겸 14구에서 5구까지 걷는다. 몽수히 공원 뒷길을 따라 걷는데, 밤하늘 위로 오리온 자리가 보인다. 겨울 별자리는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면서 가족들 생각이 났다. 돌아오는 길은 늘 하던 대로 썽떼 가(R de la Santé)를 걸어오다가 아하고 대로(Bd Arago)로 빠져 한국식당에 갔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슈퍼마켓과 메트로—나비고 충전이 필요했다—를 차례로 들른 뒤 기숙사에 돌아왔는데, 빠듯한 월요일 일정에 적응이 됐다 해도 막상 피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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