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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의 일기: 휴식Vᵉ arrondissement de Paris/Janvier 2022. 1. 27. 21:56
# 앞뒤가 맞지 않는 이곳의 행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기록을 남겼고, 그밖에 파리에 와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도시가 고르게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는 차라리 행정부서가 없는 게 낫다고 말해서 과장은 아니다!!) 물론 이는 파리가 비록 20개의 행정구역(Arrondissement)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면적으로 볼 때 서울보다 6분의 1 정도의 크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착시현상인지도 모른다. 달팽이 모양처럼 생긴 파리의 행정구역 안에서도 외곽으로 갈 수록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외곽이라 해도 16구처럼 알려진 부촌도 있다.) 또 서울만한 면적으로 범위를 넓혀 볼 때, 그러니까 파리의 근교(banlieu)까지 고려한다면 내가 보는 이곳의 도시 환경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 드 프랑스(Île de France) 정도로 넓혀야 비로소 서울의 두 배 정도 크기가 된다.)
여하간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이 나뉜다면, 파리는 흔히 동서로 나뉜다고들 한다. 소득분포를 보면 16구를 중심으로 하는 파리의 서부와 서부 근교까지도 소득 수준이 동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는 이전에 소피가 소개해준 대로 파리의 동부가 산업화시기에 급격히 성장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내가 지내는 5구는 파리 동부로의 접근이 더 나은 편이어서 아직 오페라 갸르니에나 콩코드 광장 쪽으로는 나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샹젤리제 거리나 에펠탑 방면은 조금 더 멀게 느껴진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내가 관찰한 한정된 범위 안에서 파리는 상권이 모든 지역에 걸쳐 고르게 분포해 있고, 상권을 이루는 가게들의 업종도 각양각색이어서 상업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코로나로 상권이 타격을 입은 모습도 보이고, 장사가 잘 되는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의 구분이 확연히 눈에 띄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양성이 느껴진다. 특히 서점과 영화관을 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서점의 경우 영문판만 취급하는 서점, 중고책만 파는 서점, 고문서를 다루는 서점 등 매우 다양하다. 영화관도 멀티플렉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학교 옆 독립영화관은 이 시국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영화를 본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이 프랑스라는 인식의 렌즈를 한 꺼풀 벗겨내면 이 안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 같다. 파리 시내를 미로처럼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는 청회색 지붕의 오래된 건물들도 외관은 언뜻 천편일률적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건물마다 창문들의 높이와 위치, 모양이 다 다르다. 물론 지붕 위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이 옹기종기 고개를 내민 굴뚝들을 보면, 다른 한편으로 참 복잡하고 고루하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가 배관 공사를 하게 되면 도대체 어떻게 작업할까?) 이런 게 파리의 매력이라고 느끼기에는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다. 반면에 몰랐던 파리의 모습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는 것 역시 느껴지는 것 같다.
# 어젯밤에는 『토지』 읽는 재미에 새벽 늦게 잠들었는데도 아침에 일찍 눈이 뜨였다. 아직 도서관은 문을 열지 않았을 때라서 다시 읽던 책을 들고 카페로 가 계속 책을 읽는다. 정오가 안 돼서 카페를 나와 세탁소에 가보았다. 셔츠 한 벌과 니트 한 벌. 물세탁을 하기는 어려운 빨랫감들을 드라이 클리닝(nettoyer à sec)하기 위해서다. 근방에 세탁소를 알아보니 죄다 평점이 안 좋아서 좀 걸어나가야 하더라도 뤽상부르 공원 근처의 세탁소로 향했다. 드라이 클리닝을 주문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옷에 묻은 얼룩이 뭔지 물어볼 때는 뭐라 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사전을 찾아가면서 대답을 했다. 옷에 태그를 부지런히 들춰보면서 태그에 쓰인 글자가 한자냐고 내게 묻는다. 뒤이어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격을 알려주는데 예상은 했지만 한국보다 비싼 물가다. 드라이 클리닝 두 벌에 21유로. 월요일 방문.
오후와 저녁에는 프랑스어 회화 수업 하나와 작문 수업 하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선생님의 건강상 이유로 취소되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적 확진자로 보면 프랑스는 국민의 네 명 중 한 명이 감염된 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사전에 메일로 알려줘서 다행이다. 물론 당장 오후 일정이 텅 비어버려서 막연하기는 하지만.
# 오후에 예정됐던 수업이 모두 취소되었고 딱히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도서관에서 다음주까지 읽어야 할 논문을 한 편 읽었다. 연금 문제에 관한 내용이다. 지루하다 싶으면 도서관을 나와서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출력하면서 돌아다녔다. 오늘은 행정업무가 걸려 있는 것도 없어서 느긋하다. 도서관을 나서고 보니 주위가 어두워져서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이 일대의 아시안 푸드를 웬만큼 다 도전해 본 것 같은데, 오늘 저녁으로는 뭘 먹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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