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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의 일기: 휴강Vᵉ arrondissement de Paris/Janvier 2022. 1. 25. 20:18
# 오늘 아침은 노동경제학 수업이 있다. 어제 장시간 수업을 들었더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화요일 수업 중 일부를 조정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오전 수업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에 관한 주제가 다뤄졌다. 차별의 기준은 성별이 될 수도 있고, 인종, 학력이 될 수도 있다. 노동시장에서 이뤄지는 차별에 어떤 유형이 있는지 살펴본 다음 각각의 측정방식에 대해서 배웠다. 중간에는 자신이 얼마나 성별에 관한 스테레오타이핑을 가지고 있는지를 측적하는 간단한 실험이 있었다. 지원자 한 명이 나와서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성별과 그에 걸맞는 경력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실험 결과 지원자(프랑스 출신의 어린 남자 대학생이었다)는 ‘남:녀=직장:가정’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다소 지닌 것으로 나와 수강생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 오후 수업까지는 꽤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케빈이라는 친구와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파니니와 커피를 먹었다. 케빈은 이탈리아에서는 볼로냐에서 공부하고 바르셀로나에서 수학한 뒤 지금은 석사 과정으로 파리에 와 있다. 지난 목요일에 도착했다는 그가 처음 하는 말은 이곳 행정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학제가 매우 복잡한 이곳에서 소속이 같다는 데에서 처음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조교 업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학교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고는 있는데, 정작 학생증이 없어서 건물 출입을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기숙사를 신청했음에도 입주가 이뤄지지 않아, 친구 집에 얹혀 살며 파리 북부에서 14구까지 길게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곳 행정처리에 이만저만 골치가 아픈 게 아니라고 했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기숙사에 들어왔고 학생증이 있는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써는 내 딴에 메일을 도대체 몇 통을 썼는지 모른다=_=) ‘French Administration’을 언급할 때마다 제스처와 억양과 표정이 바뀌는 그를 보면서 나만 겪는 불편함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럴 때마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만큼 번듯한 도시를 짓고 나름대로 국력을 행사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 오늘 오후 수업은 취소되었다. 강의실에 도착한 여덟 아홉 명의 학생들은 시간이 다 되도록 교수와 많은 학생들이 오지 않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서 당혹스러워 했다. 정확히는 학습 홈페이지에 휴강 공지가 있기는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하지만 나처럼 학사 행정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안내를 인지하지 못해서 강의실에 도착해 있었다. 무엇이든 행정업무를 보려면 우편 또는 메일부터 보내라고 하는 이곳에서 정작 휴강 안내는 메일로 안내 받을 수 없다니. 개별적으로 사전에 메일 안내가 있었다면 비록 소수의 학생일지라도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예측불가능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여하간 오전에 일찍 수업이 끝나자마자 5구로 돌아오고 싶었던 나는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세 시간 가까이 14구 캠퍼스에서 애매하게 시간을 보내다 정오를 한참 넘긴 시각이 되어서야 버스를 타고 5구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 기숙사로 돌아온 늦은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직 수업을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이곳에 적응하면서 수업을 따라가려면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어제 오후에 들었던 공공 재정을 간단히 복습했는데, 사실 그보다는 공부를 하려고 수업자료를 출력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러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직원에게 물어본 결과 장장 두 시간만에 수업자료를 출력할 수 있었다. (여기선 시간이 쉽게 간다.) 다행히 백발의 직원이 하나하나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문제는 내일도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 인쇄물을 출력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점. 오늘 인쇄한 방식은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더 단순한 방법이 없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저녁으로는 얼마전 갔던 한식집에서 테이크아웃을 했다. 주인 아저씨가 밥과 반찬을 무료로 주셔서 감사했지만, 부담이 될까봐 반색하며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파리에서 한식을 먹는다는 건 아직까지는 사치인 것 같다.# 오늘로써 이곳에 도착한 지 꼭 2주일이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사는 모양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가도 벽에 부딪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도시의 풍경이 화사해질 것이다. 또한 모든 게 더 나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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