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의 일기: 맥주 한 잔

 

                    # 이른 아침 머신러닝에 관한 방법론 수업이 있었다. 이곳에 와서 방법론 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기에는 영 아쉬워서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PK 교수는 나이가 젊어 보이며 카키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쉬운 내용들이 나와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업 후반부로 갈수로 점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질문이 계속해서 나오기는 하지만 방법론 수업의 특성상 다른 강의들과 비교할 때 수업이 처지는 느낌이 있다. 강의 세 시간 동안 쉬는 시간이 두 번 주어졌다. 학생들도 조금 지루해하는 눈치고 교수도 그게 신경쓰이는 눈치다.

 

                    공공 재정 수업을 같이 듣는 여학생이 내게 먼저 인사해 왔다. 듣는 인원이 꽤 많은 수업이어서 구면인 수강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고, 나는 5구에 있는 팡테옹 캠퍼스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므로 짧은 대화를 끝내고 인사한 다음 헤어졌다.

 

 

                    # 오전 수업은 14구에 있었고, 오후 프랑스어 수업은 5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시 5구로 돌아왔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님에도 버스를 한 번 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먼 거리로 느껴지게 한다. 학생식당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식사하는 학생들로 그야말로 도떼기 시장이다. 평소에는 사람이 없는 이른 시간에 와서 식사를 하는데, 오늘은 14구에서 넘어오느라 시간이 걸렸으니 어쩔 수 없다. 

 

 

                    # 오후에는 바르톨로메의 문법 수업으로 오늘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시간에 관한 표현들을 확장해서 배웠다. 오늘 수업은 전반적으로 그리 집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조라는 영국에서 온 친구와 짝을 이루어 문법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그래도 하다보니 두 시간이 금방 간다. 바르톨로메는 항상 열정적이고 진지하다. 발성(發聲)을 따로 배운 건지 목소리가 뱃심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원래는 저녁까지 진행되는 작문 수업까지도 이어서 들어볼까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일찍 기숙사로 돌아왔다.

 

 

                    # 오후 수업이 끝난 뒤에는 잠을 청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게 어제 잠을 잘 못 잤던 것 같다. 여기는 저녁시간이 보통 7시부터 시작해서 늦게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저녁을 먹기까지도 꽤 시간이 남아 있다. 선잠을 깬 뒤에도 시간이 남아 있어 문뜩 퐁피두 센터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퐁피두 센터를 가기에는 애매한 시각이다. 조금 기운을 차리고 나니 기숙사 방에 빈둥거리면서 책의 남은 부분을 마저 읽는다. 

 

                    어쨌든 저녁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먼저 무프타흐 시장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기숙사에 짐을 옮겨 놓았다. 이제는 무프타흐 시장에 있는 franprix의 계산원—모히칸 머리를 한 아시안이다—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다음에는 기숙사 바로 옆 게 뤼삭 거리에 면한 펍으로 향했다. 팬데믹 때문에 학생식당에서 식사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테이크아웃으로 식사를 해결했는데, 오늘은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으면서도 선뜻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던 가게였다.

 

                    출입구 가까운 테라스에 앉아 있으니 오래 걸리지 않아 식사가 나온다. 맥주는 진작—chauffe 작은 잔으로 주문했다—에 나와서 이미 반 잔 정도 마셨다. 겨울의 밤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살을 에는 한국의 겨울바람에 비하면 부드럽다. 테라스에는 두 개의 큰 그룹이 무언가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쪽은 영어로, 다른 쪽은 프랑스어로 떠들고 끊이지 않고 술을 나른다. 차가운 밤바람을 쐬면서 맥주를 마시니 조금 기분전환이 된다. 오늘 밤은 무슨 일인지 학교도 밤늦게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온 어린 학생들로 매우 분주하다. 학기가 시작되는 기간은 아니고 무슨 프로그램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