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일상/book 2016. 11. 7. 00:12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L. 레너드 케스터, 사이먼 정/현암사>
"권력분립의 원칙이나 커뮤니케이션의 기밀 유지가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대통령의 면책 특권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입안자들이 미합중국 정부의 구성을 기획하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3개 정부기관으로 권력을 나누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권력기관들이 절대적으로 독립되어 각자의 길을 가도록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자유의 보장을 위해 권력의 분산을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이 분산된 권력을 운용 가능한 하나의 정부체제로 통합하는 것 역시 헌법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헌법은 이들 권력 기관이 분리되었으면서도 상호의존하며, 자율을 누리면서도 서로에게 생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명한다. 대통령 측이 주장하듯 대통령의 특권을 군사적, 외교적으로 민감하다고 볼 수 없는 사항에서까지 공공의 이익이라는 일반적 명분을 들어 형사법의 집행을 위해 필수적인 소환을 거부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운용 가능한 하나의 정부체제를 추구하는 헌법의 이상을 뒤엎고 헌법에 명시된 사법부의 역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와 관련된 기록 제출을 거부한 닉슨 대통령에 대해 미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의 일부를 발췌했다. 연방대법원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판결 전문을 담아야 하겠지만, 책에 나와 있는 글을 다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희대의 정치 스캔들이었던 워터 게이트가 사법적으로 처리되고,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에필로그에 잠시 소개가 된다. 요즘 정국(政局)에 적용해 볼 수 있을 만한 대목인 것 같아서 일부 발췌했다.
원래 몇 년 전인가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아마 학교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 것 같다. 번역도 괜찮고 이슈에 대한 정리도 매우 간결하게 잘 돼 있는 책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책이라 거의 새것에 가까운 책을 대출해서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이슈-판결(합헌판결/반대의견)-에필로그"의 구조로 총 31개의 법적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 뒤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을 읽을까 생각했지만, 굳이 미국 이슈까지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읽지 않았다가 몇 년이 흘러 불현듯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위에서 닉슨 대통령의 워터 게이트 사건은 최근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잠깐 언급한 것이고, 사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읽었던 파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대정책'에 관한 부분이었다. 해당하는 챕터는 <그루터 對 볼린저> 사건이다. 미시건 로스쿨 지원자였던 그루터라는 학생은 당시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종 쿼터제로 인해 선발되지 못했고, 이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한 것이 연방대법원까지 이른 사례이다.
음.....어렵다 이것도.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들이 있다. 공무원 선발시 일정 비율 여성을 선발하는 제도라든가 대입에서 지역할당제, 국가유공자 우대 등이 그것이다. 지금은 위헌 판결이 났지만, 군 가산점제는 언제든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는 이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방대법원은 미시건 로스쿨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인종적 다양성이 사법 문화의 발전과 다양한 가치 대변에 기여한다는 로스쿨 당국의 취지가 연방대법원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다만 단서를 하나 붙였다. 역차별의 소지가 있는 현 정책(affirmative action)은 장기적으로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성, 지방 학생, 국가유공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대정책은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라고 본다. 다만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가 아닌 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역차별이 가해진다는 것이 큰 쟁점일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 평등이 달성된 단계에서라면 우대 정책을 장기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지만,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역차별이며 궁극적으로 평등한 상태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나도 '현재' 시점에 한정지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대정책을 지지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폐기되는 것이 사회가 그만큼 발전해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실 가끔은 이러한 우대 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인 기회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변화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제도적인 접근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 진출 과정에서 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대상이 대체로 '어른'이기 때문이다. 사회 진출 시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 이상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지방의 교육기반이 부실한 상황에서 지방소재 대학 출신의 학생을 우대한다고 한들, 이는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된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과밀하게 집중된 교육 인프라와 인력들을 분산하거나 또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 이들 인프라와 인력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 도쿄나 베를린이 아닌 지방도시의 대학도 수도권 대학에 준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이러한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매우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아이' 때부터 실질적으로 균등하게 교육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그밖에 거의 종반부에 나왔던 주식에서의 '내부자 거래'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본인에게 불리한 내부자 정보를 접한 주식 소유자가 공시 전에 주식을 매각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본인에게 유리한 내부자 정보를 접한 주식 소유자가 공시와 상관없이 계속 주식을 보유한다면, 비록 내부자 정보를 얻었음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범행사실이 없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내부자 거래에 대한 처벌은 일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팅이 더 길어지기 전에 그만 써야겠다...갈수록 포스팅할 때 시간에 쫓긴다..ㅠ '종교'에 관한 주제만 아니라면 미국에서 벌어진 법적 논쟁도 우리 사회와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나라에서도 충분히 '종교' 문제가 불거질지도 모른다. 여튼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겠다.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립 로스가 말하는 노(老), 미추(美醜), 그리고 성(性) (0) 2016.11.21 조르주 심농 추리소설집 (0) 2016.11.18 돈과 정의 (2) 2016.11.06 삶과 죽음 (0) 2016.10.29 어머니 (0) 201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