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로스가 말하는 노(老), 미추(美醜), 그리고 성(性)일상/book 2016. 11. 21. 00:10
<에브리맨/필립 로스/문학동네> & <죽어가는 짐승/필립 로스/문학동네>
그림은 귀신을 물리치는 일과 같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악한 것을 몰아내려 했던 것일까? 그의 가장 오래된 자기기만? 아니면 살려고 태어났지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지식으로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로 그림에 달려든 것일까? 갑자기 그는 무(無)에 빠져버렸다. 무라는 상태만큼이나 '무'라는 말소리에 빠져 길을 잃고 표류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역효과를 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도!
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질감'. 이것은 그의 언어에서는 그에게 낯선 어떤 상태를 묘사하던 말이었다.
—에브리맨 中
노년을 상상할 수 있어? 물론 못하겠지. 나는 하지 않았어. 할 수 없었어. 그게 어떤 건지 전혀 몰랐어. 잘못된 이미지조차 없었어—아무런 이미지가 없었어. 사실 누구도 다른 것을 원하지 않아. 어쩔 수 없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가운데 어떤 것과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아. 이 모든 게 나중에 어떻게 될까? 여기서는 둔감함이 관례야.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든 현재 자신의 단계보다 나아간 단계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어. 어떨 때는 한 단계를 반쯤 지나서야 자신이 그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기도 해. 그렇지만 발달의 초기 단계들에서는 다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어. 그렇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중간 단계들에서는 기가 꺾이지. 하지만 끝은? 흥미롭게도 끝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생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인생 밖에 나와 서 있는 때야. 내내 자신의 쇠퇴를 관찰하면서도 (나처럼 운이 좋은 경우라면) 지속적인 활력 덕분에 쇠퇴와 상당히 거리를 두게 돼—심지어 의기양양하게 자기는 쇠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래, 불가피하게도. 불쾌한 결말에 이르렀다는 표시들이 늘어나는데도, 그럼에도 그 밖에 서 있는 거야. 그런 객관성이란 지독하게 잔인한 거지.
—죽어가는 짐승 中
부산을 오며 가며 다해서 세 권의 책을 읽었다. 부산을 내려가는 길에 읽은 것이 조르주 심농의 단편집,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읽은 것이 필립 로스가 쓴 두 편의 소설이다. 각각 채 200페이지가 안 되는 비교적 가벼운 분량이다. 생각보다 조르주 심농의 단편집을 빨리 읽어버리는 바람에, 부산 서면의 한 서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편도 5시간이 소요되는 무궁화호 열차, 그것도 입석 칸에서 시간을 떼우려면 마땅히 독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통과도 같았던 카페칸인 4번 차량에 끼여 앉아 겨우겨우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 두 권의 책마저 없었다면 정말 무료했을 거다.
올해 밥 딜런이라는 대중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수상자로 거론되던 몇몇 작가들은 아쉬운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필립 로스'라는 작가 역시 그러한 작가 중 한 명인데, 얼마 전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으로 한강이라는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아 이슈가 된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퓰리처 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니 이력이 보통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입석칸에 앉아 어렵게 어렵게 독서를 한 탓인지, 아니면 직전에 술술 읽히는 추리소설을 읽은 탓인지, 무겁고 음울하까지 한 두 편의 소설은 그다지 호감이 느껴지는 내용은 아니었다. (게다가 밖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결정적으로 '늙음'이라는 주제가 20대인 내가 공명(共鳴)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았나 싶다. 잊을 만하면 도지는 질병, 질병의 와중에 비집고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원초적 본능, 이기적인 욕구로 인해 단절되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일견 추하기까지 한 이러한 탐닉을 작가 필립 로스는 고백하듯이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우리가 흔히 터부시하는 욕망에 대한 무한한 갈망, 성(性)에 대한 갈망, 게다가 중년을 넘긴 남성이 드러내는 절제되지 않은 이들 갈망에 대해 작가는 도발적인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게 글을 풀어나간다. (느낀 점을 쓰며 되돌아보니 갑자기 괜찮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어떤 면에서 "늙어감"이야말로 터부시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삶의 단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젊음"을 찬미하는 예술작품은 많지만 "늙어감"을 주제로 하는 예술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늙어감"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늙어감"이 낳는 아픔, 슬픔, 괴로움, 그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도려내어 솔직해질 것을 요구하는 것 이상의 관조(觀照)를 저자는 보여준다. 눈길을 돌려버리고 싶은 주제를 펜 끝으로 담아낸 저자의 용기가 느껴진다.
한편 <죽어가는 짐승>에서 전통적 혼인 관계에 대해 읽는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의 급진적인 관점이 좀 흥미로웠다. 만족하지 않는 혼인상태를 유지하려는 아들에게 주인공인 남자는 아들이 진정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이 역시 당장 내가 공감할 만한 주제는 아니기는 했지만, 이런 논지를 펼친다는 게 나름 재밌었다. 실제로 필립 로스의 급진적인 주제 설정과 일부 과격한 표현 때문에 미국 문학계 내에서도 이 작가에 대한 평가 자체가 극명하게 갈렸었다고 한다.
<에브리맨(Everyman)>은 "보통사람"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필립 로스라는 작가가 바라본 "보통사람"이 겪는 노화의 과정, 미(美)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하얀 마음 (0) 2016.11.26 마이클 샌델 이후 (0) 2016.11.24 조르주 심농 추리소설집 (0) 2016.11.18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0) 2016.11.07 돈과 정의 (2) 2016.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