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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헌법 / 문흥수 / 박영사> & <법철학 / 김선복 / 세종출판사>
사법부 독립은 법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의 위기를 사법권 독립을 위한 전환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 발탁승진제도와 주관적 판사근무평정제도를 폐지할 것을 강력히 바라는 바입니다.
그동안 사법부가 제대로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만큼 공정하게 재판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법관들도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마치 법관들이 신이라도 되는 양 법관인사제도를 운용한 데 있다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독재를 경험한 독일 사람들이 그 기본법(헌법)에 판사는 그 의사에 반하여 판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 정직, 전보 등을 할 수 없도록 못박아 놓은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법관의 독립 없이는 공의로운 재판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그리고 공의가 없는 나라는 부패가 만연하기 때문에 절대로 흥성할 수 없습니다.
— 정의와 헌법 中
이익충돌이 있는 곳에서만 정의는 문제가 된다.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 곳에서는 정의에 대한 욕구는 없다. — 이러한 문제는 합리적인 인식이라는 수단으로 해결될 수 없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언제나 결국 감정적인 요소에 의해 정해지고 그래서 최고의 주관적인 성격을 갖는 판단이다.
— 진정한 가치판단이 주관적이어서 매우 상이하고, 서로 상반되는 가치판단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결코 모든 개인이 자기 자신의 가치체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개인들의 가치판단은 서로 일치한다 — 각 가치체계, 특히 정의의 중심이념을 지닌 도덕질서는 사회적 현상이고 그리하여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사회의 본성에 따라 다르다. — 그러나 많은 개인들의 가치판단이 일치한다는 것은 결코 이 가치판단이 옳다는 것, 즉 객관적 의미에서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태양은 지구를 돌고 있다고 믿거나 믿었다는 사실이 이 믿음이 진실에 기인한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아니었거나 아닌 것처럼 그렇게. 진실의 기준처럼 정의의 기준은 사실판단 또는 가치판단의 횟수가 아니다.
— 법철학 中
# 정의와 헌법
얼마 전 마이클 샌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는 지인의 추천을 받고 읽은 책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정의에 대한 논의. 둘째, 주요 기본권과 관련된 판례. 셋째, 사법개혁에 대한 저자의 견해.
첫 번째 파트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평을 일부 포함한다. 역대 철학자들의 정의 개념을 정리해놨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복습하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째 파트는 마찬가지로 최근에 읽었던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의 구성과 비슷하다. 미국의 연방대법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주요 판례들을 실어놓았다. 자유와 평등에 관한 헌법조항(제10조, 제11조)에 관한 판례는 충실한데, 사회권(제32조의 근로권 등)에 대한 판례가 부실한 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성매수범에 대한 개인신상정보 공개에 대한 판례를 관심을 갖고 읽었다.
끝으로 세 번째 파트가, 이 책이 다른 일반법학 서적과 구별되는 부분인데, 90년대부터 사법개혁을 주창해온 저자가 본인의 견해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통 "사법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할 뿐, 그래서 제도적으로 어떤 개혁이 수반되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나 또한 잘 몰랐던 사실인데, 세 번째 파트를 읽으면서 이미 G7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일찍이 자리잡은 법관의 종신직 보장, 원통형 인사관리시스템 등의 제도적 개선을 통해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법철학
예전부터 <법철학> 책은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다. 서울도서관에 가서 <정의와 헌법>을 빌리면서 마침 눈에 띄는 얇은 책을 집어들었다. 그게 화근이었는데, 한국어임에도 못 알아듣겠더라. 초반에 고대~중세 분야의 법철학은 그래도 수월하게 읽었다. 대학교 때 <서양 고대/중세 정치사상>을 수강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다뤄진 내용이 거의 그대로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오컴"까지는 괜찮았다.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 예컨대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홉스, 로크, 루소" 3인방과 칸트의 법철학도 어찌됐든 눈에 익는 단어들이 나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세~근대 파트는 거의 정줄을 놓고 읽었다. 단어에 대한 개념설명이라도 좀 있으면 좋으련만, 절반쯤 읽고 그냥 반납해버리려다 간신히 완독했다. 다행인 것은, 저자가 서두에 던졌던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말미에 달아놓고 있다는 것. 다시 익숙한 <정의> 문제로 되돌아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통 법철학 서적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두꺼운데, 이 책은 사이즈도 작고 페이지도 300쪽이 채 안 된다. 그렇지만 읽기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좀 더 친절한 법철학 서적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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