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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심농 추리소설집일상/book 2016. 11. 18. 22:50
<갈레 씨, 홀로 죽다 & 누런 개 & 센 강의 춤집에서 & 리버티 바 /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부산 여행 중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었던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의 단편집. 대-박이었다. 네 편의 에피소드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누런 개>와 <센 강의 춤집에서>였다.
옮긴이(임호경 譯)는 국내에서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하는데, 실제로 프랑스어 문학계(작가는 벨기에 출신이다)에서는 쥘 베른과 알렉상드르 뒤마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번역/출간된 책이 조르주 심농의 작품이란다. 달리 말해, 빅토르 위고, 알베르트 카뮈, 생텍쥐베리, 스탕달 같은 기라성 같은 프랑스 작가들보다도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소설이라는 것. 과연 읽는 동안 나도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다.
추리소설인지라 느낀 점을 따로 남기는 대신, 책의 끝에 실린 옮긴이의 서평 가운데 '매우 공감했던 부분'을 발췌하여 싣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그는 일반적인 추리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해 간다. 즉 기존의 탐정들이 현란한 지적 추리를 통해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데 반해, 매그레(소설 주인공인 수사반장)는 인간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통해 사건의 본질에 도달해 가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범죄를 감추는 교묘한 트릭을 밝혀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범죄자에 대한 시각도 달라진다. 기존의 추리 소설에서 범죄자는 합리적 질서 위에 세워진 정상적인 일상을 흩트리는, 따라서 깨끗이 청소되어야 마땅한 일종의 괴물이나 악마인 반면, 심농의 소설에서 죄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심농의 표현을 따르자면 <벌거벗은 인간>), 기질에 의해, 상황에 의해, 운명에 의해, 내적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죄에 내몰리는 가엾은 중생들일 뿐이다.
매그레 반장은 죄인들에 대해 씁쓸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심농이 그리는 세계는 폭풍이 몰아치고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울한 회색빛 세계이고, 삶에 대한 그의 시각은 지독히도 염세적이고 절망적이지만, 다행히도 거기엔 바람과 비를 막는 두터운 외투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찌르고, 한 줄기 따스한 연기를 피우며 철벅철벅 진창을 걸어가는 매그레 반장이 있는 것이다. 이 우울한 현실과 이 기적처럼 강하고 너그러우며 따스한, 그리고 유머러스한 사내[혹시 심농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신(神)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의 기묘한 조합! 이게 바로 매그레 시리즈의 본질이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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