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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엘도라도> & <삶이란 무엇인가/수전 울프/엘도라도>
# 죽음이란 무엇인가?
최근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환자 본인의 자발적 의사가 있을 때, 적극적 안락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를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답게 살 권리와 생명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여러 의견이 오고 갔다.
나는 기본적으로 안락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 논거 중의 하나는 과연 환자의 자발적인 의사가 있다고는 해도 그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예컨대, 극심한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내릴 때, 과연 그게 모든 편익과 기회비용을 고려한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스러웠다. 아무리 충분한 숙려기간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의심이 가시지 않는 한 '존엄한 죽음'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기존의 의사와는 달리 본인이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거나, 환자의 의식이 불명인 상태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해진다. 어찌 됐든, 권리를 존중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안락사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당시 느꼈던 미진한 부분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소 해결할 수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철학서적이다.
셸리 케이건이 그의 논리를 전개해가는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1.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2. 죽음은 인간이 누릴 수 있었던 효용을 박탈한다
3. 그래서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 (+자살은 합리화될 수 있을 것인가?)
셸리 케이건은 죽음의 의미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가능한한 종교적 관념, 도덕적 관념을 배제하고, 차가운 머리로 논리를 전개한다. 요컨대, 기존의 편향된 통념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가 영혼의 존재를 반박하고,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정의내린 죽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죽음을 선(善)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생 또한 선(善)이라 할 수 없다.
죽음은 무(無) 그 자체이다. 만약 '무(無)'가 '무'라는 관념의 존재를 의미한다면 '무'라는 표현이 부적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공(空)'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인간의 삶은 분명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본인이 소망하는 것을 제한된 시간 안에 달성할 가능성보다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렇다고 삶의 의미가 줄어드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 점을 셸리 케이건은 분명히 한다.
보통의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또는 경험을 전제로 한다. 즉,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다룬 철학이라는 게 생소했지만, 최근 고민했던 부분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어서 궁금증을 일부 덜어낼 수 있었다.
#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active engagement)' 과정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런 차원에서 삶의 의미는 '주관적인 이끌림(subjective attraction)'이 '객관적인 매력(objective attractiveness)'을 만났을 때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
수전 울프가 '의미있는 삶'에 대해 내린 정의다.
셸리 케이건의 책을 읽으면서 사실 초반에는 조금 애를 먹었다. 철학책은 익숙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논리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 한편 예시 또한 풍부하게 동원되고 있기 때문에, 논지와 예시를 구분해 가면서 논리의 핵심을 짚어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책의 절반을 넘어가면서부터야 그의 논지가 술술 읽히기 시작했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삶이란 무엇인가>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의미있는 삶'에 대해 논증하는 과정도 상당히 흥미롭다.
그녀가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그 동안의 철학이 공리주의(功利主義)로 대표되는 "합리성"과 칸트의 실천이성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도덕"이라는 두 개념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 두 개념이 설명해낼 수 없는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 3 지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개념이 '의미있는 삶'에 대한 철학.
책은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1. '삶의 의미'(저자의 이론)
2. 저자의 이론에 대한 네 학자의 논평
3. 논평에 대한 저자의 이론 보완/보충
나는 그녀가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요건 중 하나인 '객관적 가치'라는 부분에 의문을 느꼈다. 그녀의 말대로 '객관적 가치를 지닌 활동'에 관여할 때 인간의 삶은 더욱 충만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객관적 가치'를 매기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단순 노동자와 전문직 종사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지닌 가치의 우열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물론 직업이 지닌 가치에 대해 사회적인 통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막연한 설명으로는 좀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철학계에서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삶의 의미'에 대한 개념을 조망했다는 점, 이를 위해 '주관적 이끌림', '객관적 매력', '적극적 관여'라는 요소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이론은 의미가 있다.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는 동안, 두 저자의 이론을 따라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모든 인간의 근원적 질문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