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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막심 고리끼/열린책들>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 일이지만 인간을 믿지 말아야 하고 인간과 투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증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랑만을 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만약에 성난 야수와 같이 어머니를 쫓아다니고 어머니의 살아 있는 정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어머니의 인간적인 얼굴에 발길질을 해대는 사람이 있다고 쳐요. 그래도 그 인간을 용서해야만 합니까?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제게 떨어지는 모든 모욕들을 참아 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폭압자를 묵인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등을 치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떠한 불의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비록 그것이 제게 직접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저는 이 세상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사 오늘 나를 모욕하는 건 그대로 받아 줄 수도 있고, 폐부만 찌르지 않는다면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문젭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일, 그 능욕자는 나에게 제 힘을 시험도 해보았겠다, 당장 다른 사람의 가죽을 벗기려고 달려갈 겁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색안경 쓰고 바라보게 되고 가슴을 꽉 움켜잡고 사람들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내 편, 저 사람은 적,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 어디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러시아 문학을 좋아해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은 적은 있다. 익숙한 장르는 아니었지만 체호프의 희곡들도 몇 편 읽었다. 최근에는 서점을 방문했을 때 찜해둔 책이 있었는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였다. 그렇기는 해도 마음 속에 잠정적으로 정해둔 독서 리스트가 이미 꽉 들어찬 상태였기 때문에, 이 두 소설을 선뜻 찾아 읽지는 못했다. 게다가 올해는 독서가 너무 소설에 치우친 탓에 사회과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을 읽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결국 우연한 기회에 생각에 없던 또 다른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어머니>!!
하루는 수원까지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데 딱히 할 게 없어서, 책이라도 가져가야겠다 해서 고른 게 이 책이었다. 두꺼운 책이라 덕분에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는 했지만, 종이가 가벼워서 무겁지는 않았다. 몰랐던 사실인데, "열린책들"이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면서 성장한 출판사라고 하니 아무래도 이쪽 분야에는 정통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름 표기법도 좀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막심 고리키"라 표현되는 작가의 이름이 여기서는 "막심 고리끼"로 표기된다. 이는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처음에는 쌍자음이 많아서 좀 어색했는데, 그게 또 계속 읽다보니 곧 적응되었다.
러시아 문학은 내용이 명료한 느낌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명료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는 노동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이를 탄압하는 당대 집권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의 "어머니"라 함은 "모정(母情)"을 상징하는 어느 여성 개인이라기보다는, 노동자와 농민을 하나로 연대시켜주는 "하나의 품"을 의미한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고, 노동자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경험이 부재한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개념을 곧바로 적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막심 고리키에 앞서 러시아 문학을 견인했던 톨스토이와 푸슈킨도 <어머니>를 러시아 문학의 역작으로 일컬었다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막심 고리키가 살던 무대는 지금 내가 놓인 시공간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계급의식, 인간의 허영심과 비합리적인 폭력성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인류의 역사 자체에 이러한 부정의(不正義)한 요소는 늘 존재해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증진되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의 사상이 유물론에 기초하고 있다보니, 사회주의자들이 일체의 종교를 배격하는 부분이 꽤 비중있게 다루어지는데,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거니와 우리나라에 유일신(唯一神) 사상이 전래된지도 얼마 되지 않다보니 그리 피부에 와 닿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장에 이입을 하자니, 종교적인 문제는 당대 시민들이 사회주의를 수용하는 데 굉장히 커다란 쟁점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소설 속에 면면히 담긴 작가의 인간관(人間觀)과, 어머니의 심경 변화(사실상의 계몽)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어머니의 마음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반추하게 되었다. 특히 소설의 종반부에 아들 빠벨이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 재판관과 수형자(노동자들)들을 대비되게 묘사한 어머니의 시선은 무척 사실적이고 현실적여서 기억에 남는다.
정의(正義)는 '말'로 표현될 때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실천'으로 드러날 때는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