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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독후감 세 편일상/book 2022. 7. 15. 16:21
『토지』, 박경리
1부에 비해 2부에서는 무대공간이 확연히 넓어졌다. 1부에서는 지리산 자락 하동이 무대의 전부였다면, 2부에서는 서울은 물론 간도와 연해주, 중국을 아우르는 공간적 무대가 펼쳐진다. 빠른 공간적 팽창에 맞물려 서사도 숨가쁘게 흘러가는 듯하다. 김훈장의 죽음, 길상과 서희의 혼인은 무너져가는 구한말의 신분제를 보여주는 한편, 조준구의 몰락과 김두수의 등장은 외세와 결탁한 기회주의자들이 전면에서 움직이는 당시의 혼탁한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이 소설은 중학교 때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된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원제인 『노르웨이 숲』을 『상실의 시대』라 번안한 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띨 수 있는 소설 문학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은 단정적이고 선언적이기까지 하다.
어쨌든 중학교 시절의 내 감성으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 소설을 어른이 되어 읽고 보니 훨씬 이해하기 편했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대체로 조숙한 편인데, 와타나베의 나이가 불과 스물을 넘기는 시점의 이야기라는 점도 흥미롭다. 스물의 나는 어땠던가?
또 한 가지 소설을 다시 읽으며 발견하는 부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안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자주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그는 이 작품을 실제 번역하기도 했었다—사실 『노르웨이의 숲』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상당 부분 모티브를 빌려온 듯하다. 나오코가 교토 근교의 어느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야기는 스위스의 산 속에서 요양하는 카스토르프를 연상시켰다.
『저만치 혼자서』, 김훈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칼의 노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칼의 노래』가 16세기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저만치 혼자서』는 2000년대 이후 현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단편집이기 때문에 상승과 하강이 분명하지 않은 서사들도 있지만, 오히려 오늘날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과거사, 분단, 청년실업, 가족 붕괴, 인간 소외—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훈의 문장과 어휘가 좋았다. 일단 첫 번째 소설인 <명태와 고래>에서 동해를 가로지르는 고래의 무리와 바다 풍경에 대한 묘사에 확 끌려들어 가고, 이후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과장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예리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작가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명사와 동사를 엮는데, 그런 기발한 조합을 쉽게 받아들이게 될 만큼 적절하게 어휘를 구사한다. 현실의 거칠고 더러운 부분을 여과 없이 건드리지만 이야기를 차분하게 꿰어나가는 담담하고도 직선적인 문체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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