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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일상/book 2022. 10. 28. 12:53
처음엔 책을 재미있게 읽다가 도중에 현기증이 오는 것 같았다. 화자가 아주 이성적인 톤으로 복수(複數)의 자아에 대해 집요하게 분석하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글들보다도 오히려 읽기가 까다로웠던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제1의 나, 제2의 나, 제3의 나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렇다고 서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사가 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절반을 더 읽고나서부터는 어느 순간 작가가 말하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이후부터 다시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다.
글의 주제는 결국 다음과 같다. 현재를 사는 순간 나는 나를 알아볼 수 없다, 내가 나를 관찰하려는 순간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유리(遊離)된다, 나를 관찰하려는 순간에 발견하는 나는 나를 관찰하려는 나일 뿐 있는 그대로의 나 자체는 아니다, 나는 나를 인식하는 타인으로부터 규정될 뿐이다, 때때로 나는 타인이 규정한 나를 강요받는다, 따라서 나는 내 삶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죽음 이후에야 가능하다.
어찌보면 루이지 피란델로의 글은 알프레트 되블린의 글과 일맥상통한다. 자기 자신을 제삼자로 해체시키면서 기존에 자신을 바라보던 방식과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이 글의 주인공 모스카르다는 마치 <민들레꽃 살인>에서 신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코가 비뚤어진 걸 알게 되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해 자신의 자아로부터 점점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는 아마도 알프레트 되블린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루이지 피란델로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루이지 피란델로 역시 전쟁이 박살낸 인간성과 그 파편들을 보이는 그대로 펼쳐보이고자 했다. 나는 양차 대전 시기를 살지 않았지만, 미디어의 범람과 인간의 원자화가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루이지 피란델로의 논지는 유효하지 않나 생각한다. [fine]
나는 늘 그렇게 이런저런 세상이나 돌멩이들에 대한 생각에 빠져 수많은 길의 초입에서 멈춰 서곤 했다. 내게는 그런 세상이나 돌멩이들은 둘 다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말들처럼 거만하게 뛰어오르면서 의심하지도 않고 나를 앞질렀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도중에 수레를 발견했다. 자신들의 수레를. 그들은 매우 참을성 있게 수레에 매달렸고, 이제는 그것을 옆에 끼고 다녔다. 나는 그 어떤 수레도 끌지 않았으므로, 말고삐나 눈가리개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난 몰랐다.
—p. 14
이방인은 어떻게 내 안에서 견딜까? 나에게 바로 나였던 이 이방인은? 왜 그를 볼 수 없지? 왜 그를 알 수 없지? 나의 시선 밖에 있고, 타인들의 시선을 받는 동안 나를 떠받쳐야 하는 형벌을 받으며 왜 나와 함께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걸까?
—p. 28
오늘의 현실이 오직 진실하다며 우리를 속일 수 있는 능력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끝없는 공허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끝날 수도 없다. 만약 내일이 끝난다면, 인생도 끝이 난다.
—p. 97
‘이런 탄압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세계를 마치 그것이 외부에 있다는 듯 타인들에게 강요하려고 해. 그러면서 타인들이 모두 그들의 방식대로 그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타인들은 그가 보는 대로가 아니라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p. 129~130
“당신을 보기 위해 당신 스스로 당신의 생명을 중단시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마치 사진기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당신은 표정을 짓습니다. 표정을 짓는 일은 한순간 조각상이 되는 것과 같지요. 생명은 쉼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정말로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거울뿐만 아니라 모든 거울 속에서 당신을 봅니다. 당신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죠.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은 살 수 없거나 혹은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당신 자신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p. 220~221
어떤 이름도 없는 것. 오늘 현재 어제의 이름에 대해 어떤 기억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내일은 오늘의 이름에 대해 기억하지 않는 것. 만약 이름이 사물이라면, 만약 이름이 우리 외부에 둘 수 있는 모든 사물의 개념이라면, 사람들은 이름 없이 개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또 그 사물은 우리에게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맹목적인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가지고 있었던 이 이름을 내가 그들에게 비친 그 이미지의 정면에 묘비명으로 새겨 넣는다면, 나는 그것을 평온하게 놔두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묘비명, 즉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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