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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내거는 건 다름 아닌 내 삶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나는 삶, 바다의 숨결과 지금 울기 시작하는 매미들로 가득한삶. 미풍은 상쾌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며, 이 삶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싶다. ……이 태양, 이 바다, 청춘으로 끓어오르는 내 심장, 소금 맛이 나는 내 몸, 노란색과 파란색 속에서 부드러움과 영광이 교차하는이 광활한 배경. 이것들을 정복하기 위해, 내 힘과 능력을 다해야 한다. 이곳의 모든 것이 나를 본연의 나 자신으로 내버려둔다. 나는 나의 어떤 부분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가면도 쓰지 않는다. 세상의 온갖 처세술 못지않은 생활의 기술을 다만끈기있게 익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p. 23~24
인간이 되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순수한 인간이 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순수하다는 것은 세계와의 동질성이 두드러지게 되는 영혼의 고향, 피의 파동이 오후 2시의 태양의 거센 맥박과 일치하는 영혼의 고향을 되찾는 것이다. 잃어버리는순간 비로소 알아보게 되는 것이 고향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기 자신 때문에 지나치게 고통받는 이들에게 고향은 그들을 부정하는 곳이다. 이 말이 거칠거나 과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이 삶에서 나를 부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죽이는 것이다.
—p. 53~54
인류의 죄악이 우글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모든 악을 쏟아낸 후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악인 희망을꺼내 들었다. 나는 이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희망은 통념과 달리, 체념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
—p. 54~55
어떤 것도 정신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추함마저도 이름이 없으며, 과거는 무(無)로 귀결되는 도시에서는 어떤 감동을 얻을 수 있을까? 공허, 권태, 무심한 하늘, 이곳들의 매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고독이고, 어쩌면 여자일 수 있다. 어떤 유의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아름다운 어느 곳이든지 씁쓸한 조국이다. 오랑은 그런 조국의 무수한 수도들 중의 하나다.
—p. 96
고독과 위대함은 장소에 잊지 못할 얼굴을 부여한다. 미지근한 새벽, 아직 검고 씁쓸한 첫 물결들이 지나가고 나면, 들어올리기도 무거운 밤의 물살을 가르고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 그렇게 나는 그 기쁨의 추억을 아쉬워하지 않은 채 다만그것이 좋았다는 것만을 기억해 낸다. 이 기억은 여러 해가 흐른 뒤에도, 변함없기란 어려운 이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남는다. 나는 오늘이라도 그 황량한 모래언덕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그 똑같은 하늘이 다시 한번 숨결과 별들의 비를 무한대로 쏟아 내리라는 것을 안다. 이곳이 바로 순수의 땅이다.
—p. 110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비극과 절망을 혼동한다. 영국 소설가 로렌스는 말했다. “비극이란 불행을 걷어차는 힘찬 발길질같은 것이리라.” 그야말로 건전하고 당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가. 오늘날 많은 것들이 이러한 발길질 감이다.
—p. 119
절대적은 유물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왜나하면 이 단어가 성립되려면, 세상에 이미 물질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허무주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순간, 의미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의미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모든 가치 판단을 철폐하는것과 같다. 하지만 산다는 것, 가령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판단이다. 죽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그 순간 사는 것을 택한 것이고, 그렇게 상대적으로 삶의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절망의 문학이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망은 침묵한다. 침묵조차 두 눈이 말을 하는 한, 어떤 의미를 지닌다. 진정한 절망은 단말마, 무덤, 혹은 심연이다. 절망이말을 하고, 추론하고, 무엇보다 글을 쓴다면, 그 즉시 형제가 손을 내밀고, 나무가 정당화되고, 사랑이 싹튼다. 절망의 문학은 용어 자체로 모순이다.
—p. 157
약간의 순수함 없이는 사랑도 없다. 순수함은 어디에 있었던가? 제국들은 무너졌고, 국가와 인간들은 서로의 목을 물어뜯었다. 우리의 입은 더럽혀졌다. 처음엔 순수한 줄 모르고 순수했던 우리가 이제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죄인이 되었다. 신비는 학문의 발달과 함께 커져갔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오, 이 얼마나 우스운가, 도덕에 몰두한다. 무력해져서 미덕을 꿈꾸다니! 순수했던 시절에 나는 도덕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제는 도덕을 알았지만 그에 걸맞게 살아갈 능력이 없었다. 마치 예전에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언덕에서 파손된 사원의 비에 젖은 기둥들 사이를 거닐며, 포석과 모자이크들 위를 걷는 발소리만 들리는 누군가를 뒤따르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나는 파리로 돌아갔고, 몇 해 뒤 다시여기 내 고향에 돌아왔다.
—p.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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