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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이란 초월하는 고통의 강렬함에서 유래한다. 그녀가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면 내가 그녀에게 주는 고통을 그녀가 받아들여야만 해.> 내가 나의 회한을 가라앉히는 데 사용했던 이 공식은 내 정신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플라톤을 칭송하던 나의 가장 훌륭한 사상으로부터 이상적인 유령을 만들어냈다. 나는 자유분방하고 삐뚤어지고 연약하면서도 내 존재의 영역 안에서 엄격하고 강직한 영혼, 부패할 수 없는 영혼을 발견하고 흡족해했다. 나는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 영원히 사랑받을 존재라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나의 모든 악습과 나의 모든 비참함과 모든 약점이 바로 이 환영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나는 모든 똑똑한 남자들의 꿈이 나를 위해서라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배신을 모르는 여자를 지속적으로 배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p.65
나는 그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그의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 주인공을 떠올렸다. 그는 늘 우울하고 고질적인 정신질환을 앓는 인간이었다. 삐딱하고 이중적이고 잔인할 정도로 모든 걸 궁금해할 뿐 아니라 습관적으로 분석과 반추된 아이러니만 고집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는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인간이었다. 인간의 영혼이 갈망하는 뜨겁고 자연스러운 욕구를 뚜렷하기만 할 뿐 차갑기 짝이 없는 개념들로 계속 뒤바꾸는 일을 고집했고 인간의 존재를 심리학적 관찰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사랑할 줄 모르고 자비를 베풀 줄 모르고 포기도 헌신도 모르는 인간, 거짓말과 고집부리기에 익숙하고 혐오로 둔감해진 음흉하고 냉소적이고 비열한 인간이었다.
-p.203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정말 사랑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정의와 미덕을 찾고 우리의 영혼을 채워줄 열정을 찾고 우리의 불안감을 씻어줄 믿음을 찾고 우리의 모든 용기를 동원해 지켜야 할 이상을 찾고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찾고 기쁜 마음으로 죽을 수 있는 명분을 찾는다. 이 모든 노력의 끝은 의미 없는 기력 탕진에 불과하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힘과 시간에 대한 애틋한 느낌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p.213~214'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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