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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됨의 새로움여행/2024 함박눈 공주 2024. 1. 10. 23:01
즉흥적으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이번에는 공주다. 공주는 개인적으로 낯설지 않은 도시지만 한번도 여행을 위해 들른 적은 없는 곳이다. 근래에 제민천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 백제의 옛 수도가 아닌 새로운 도시공간으로서 공주를 찾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첫 공주 여행이었던 만큼 유적지를 주로 둘러보게 되었지만.
이동수단은 KTX 산천. 내가 탄 열차는 익산에서 여수와 목포로 분기하는 열차였다. 내 자리는 오른쪽 창가석이었고 시야가 탁 트인 창문 바로 옆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용산역에서 잠시 정차한 뒤 한강철교에 올라선다. 그러면 저 먼 발치에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강철교를 건널 때마다 항상 기다리는 풍경이다. 이내 열차는 노량진의 빼곡한 건물들 사이로 숨어들어 광명에 이를 때까지 지루한 도시 풍경을 비집고 달린다.
공주역에 내렸을 때 날씨는 한낮이었는데도 매섭게 추웠다. 예약해둔 렌트카를 타고 공주 시내로 들어가는데, 도무지 도보여행을 할 만한 날씨는 아닌 것 같아, 제민천을 출발점으로 하려던 처음 생각을 접고 차를 몰고 곧장 무령왕릉으로 향했다. 무령왕릉의 매표소를 통하고 야트막한 둔덕을 오르고 나서야 뒤늦게 내가 공주에 여행으로 온 적은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령왕릉은 송산(松山)에 자리잡은 무덤으로, 경주의 왕릉원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무덤의 주인과 생몰연도가 정확히 기재되어 있는 유일한 고대 왕릉이어서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무덤 입구를 널벽돌로 어떻게 봉인해놨는지, 입구에 들어찬 돌더미의 상단을 걷어냈을 때 무덤 안에서 새하얀 수증기 같은 게 나왔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1500년 전 밀폐되었던 공기가 20세기말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신묘한 장소와 시간에는 항상 연기(煙氣)가 뒤따른다.
눈구름이 지나간 공주는 너무나 청아하다. 양지바른 곳은 잔설(殘雪)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응달진 곳은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앞으로 걸어나갈 때마다 소복히 쌓인 눈의 깊이가 느껴진다. 여과(濾過)된 대기는 아무런 이물이 없어, 저 먼 산자락에 나이테를 그리듯 모여 있는 가옥들의 수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한낮 꼭대기에 올랐던 해가 기울면서 보풀처럼 부푼 구름들이 시나브로 홍조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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