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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곳에 서서여행/2024 함박눈 공주 2024. 1. 12. 13:26
이번 공주 여행에서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은 사실 외진 곳에 자리잡은 한 카페였다. 나는 지도를 보고 빨리 정보를 파악하는 편인데, 이 카페라면 딱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비가 숨어살며 복을 누린다'는 카페이름의 숨은뜻까지도 마음에 든다. 가끔은 마음에 드는 카페 한 곳을 가보고 싶다는 그런 미친 생각으로 먼 길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이 대체로 불가해하듯이.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산자락에 위치한 이곳 카페는 차량을 이용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카페 맞은 편 작은 절벽에는 저녁에 가까워진 햇살이 헐벗은 나뭇가지에 찌를 듯이 내리꽂힌다. 늘 시원한 음료를 찾는 나는, 조금 전까지의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실내에 들어서자 이내 자동적으로 차가운 음료를 주문했다. 짧은 시간 제법 긴 도보여행으로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약간의 빵도 주문했다. 카페 일대도 인적이 드물지만 마감 시간을 한두 시간 앞둔 카페 안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아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온전히 느낀 적이 있었던가?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눈에 벅찬 독서를 관두고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한낮의 해가 조금은 길어진 것 같다. 창밖에 조약돌같은 구름들이 새하얀 어둠 속으로 물러난다. 허공에서 파르르 떨던 낙엽. 너는 지금 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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