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청와대 견학에서 미처 둘러보지 못한 칠궁(七宮)을 찾았다. 칠궁은 청와대가 외부에 개방될 당시 같이 일반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이번 청와대 외부견학 중단으로 인해 칠궁 역시 못 보게 되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칠궁은 이후에도 일반에 공개되어 있었다. 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이 날은 가루처럼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긴 연휴의 무료함을 달랠 겸 부모님을 모시고 창덕궁과 후원에 이어 칠궁을 찾았다. 한복을 입은 방문객으로 붐비는 창덕궁과 달리, 칠궁은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훨씬 고즈넉했다.
서울에 궁궐이 있는 건 알아도 사람들이 칠궁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하다. 사실 나도 일 년 전쯤 서울시내 도보기행 영상을 보다가 이곳을 알게 되었다. 칠궁 또는 육상궁으로 불리는 이곳은, 조선 또는 대한제국의 왕이었거나 왕으로 추존왕의 생모이면서도 왕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영조의 어머니인 육상궁(毓祥宮)을 중심으로 이전까지 사대문에 흩어져 있던 여섯 사당을 들였는데, 사당(祠堂)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건 진귀한 풍경이었다.
한편 조선·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는 종묘에 봉안되어 있는데, 별다른 꾸밈이 없는 종묘 정전(正殿)은 상당히 숙엄한 분위기가 있다. 널따란 땅에 놓인 거친 질감의 박석(薄石) 너머로 100 미터 가량 뻗은 정전의 길다란 수평선은 서울 어디를 가도 결코 접할 수 없는 공간감을 준다. 나이가 들수록 서양 건축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리 건축의 영험스런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다. 청각이나 시각, 후각과 촉각, 미각은 더더욱 아닌, 그렇다고 오감을 망라한 것도 아닌 육감(六感)으로 감지된다고밖에 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
반면 칠궁은 알록달록하게 단청이 칠해져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나무 기둥 밑부분에 칠해진 흰색과 청회색 도장(塗裝)이었다. 오방색도 뇌록(磊綠)도 아닌 청회색이라니, 전통건축에서 보기 드문 청회색(靑灰色)을 보며 속으로 의아하면서도 조금은 으스스하다고 느꼈다. 또 흩어져 있던 사당들을 모으다보니 한 건물에 신위를 모신 게 아니라 다섯 동의 사당에 일곱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은 아주 바특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고 그 안에서도 선희궁과 경우궁은 같은 사당에 봉안되어 있다. 장희빈의 신위를 모신 대빈궁만 원형기둥인 걸 제외하면 양 옆 저경궁과 선희궁-경우궁은 사각기둥인데, 그럼에도 사당의 모양이 워낙 판박이라 그 풍경이 도열해 있는 꼬마병정같다.
칠궁 관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칠궁을 빠져나와 우리 일행은 인근 복국집을 찾았다. 내가 태어난 해보다 한 해 빠르게 개업을 했다는 이곳. 청와대에 직원들이 빠져나가면서 손이 크게 줄었겠지만, 머지않아 점심시간에 이곳을 들락거릴 직장인이나 공무원들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지는 듯하다. 가을비로 인해 눅눅하고 오슬오슬했던 이날, 복국에 들어간 미나리의 향긋함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고 맑고 따뜻한 국물은 몸의 노곤함을 풀어주었다. 부모님은 이날의 이른 저녁을 크게 좋아하셨고, 식당주인 아주머니의 대접은 너그러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