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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일상/film 2026. 2. 24. 17:05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블랙 코미디, 액션/폴 토마스 앤더슨/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록조(숀 펜), 세르히오(베니시오 델 토로), 퍼피디아 베벌리힐스(테야나 테일러), 윌라(체이스 인피니티)/162 "Freedom is a funny thing, isn't it?
When you have it, you don't appreciate it,
and when you miss it, it's gone."

The Battalion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전쟁이 있은 후에 다시 찾아오는 전쟁. 군사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이란 “적에게 우리의 의지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폭력 행동”이다. 그의 정의(定義)를 따르면 전쟁에는 먼저 마주한 적이 있어야 하고, 행위자가 관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의지가 관철되는 방식은 폭력적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건 중 앞의 두 개, 그러니까 적과 의지의 존부는 대단히 임의적이다. 우리가 누구를 피아(彼我)로 식별할 것이며, 자의적으로 수행 또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늘 고정적일 수만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건, 마지막 요건으로 따라붙는 ‘폭력성’은 앞의 두 가지에 비해 훨씬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는 클라우제비츠가 정의내렸던 전쟁이 현실 속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 고민해보게끔 한다. 프렌치 75—기성 질서를 비판하고 혁명을 도모하는 세력—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WASP라는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근본주의자 모임—의 대립은 언뜻 보아 ‘너’와 ‘나’의 구분이 명확한 구도이다. 하지만 각각의 세력이 동원하는 폭력과 기만, 술수는, 이 양분된 구도를 어느 한 쪽을 선(善), 다른 한 쪽을 악(惡)으로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또한 이들은 서로 죽일 듯 싸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결탁하고 공모하는 관계에 있기도 하다. 숀 펜이 연기하는 록조라는 군인은 극좌 무장조직이었던 KKK 창설자의 이름으로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고, 여성 혁명가 퍼피디아 베벌리힐스의 딸 윌라는 친자 확인 결과 친부가 록조인 것으로 판명난다. 치고 빠지는 유격전의 한복판에서, 각 진영의 부대원들은 동료를 배신하거나 적과의 동침을 택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그저 <One Battle>에서 끝나지 않고 <…After Another>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폭력으로 점철된, 그리고 폭력으로 매개되는 전쟁의 영속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영화 속 마지막 세대인 윌라는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선다. 내심 그녀가 가담하게 될 유격전이 선과 악 가운데 어느 쪽이 될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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