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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공포, 스릴러/알프레드 히치콕/미치(로드 테일러), 멜라니(티피 헤드런), 브랜도(제시카 탠디), 애니(수잔 프레셔티)/120>
영화의 거장, 영화의 천재로 불리는 알프레도 히치콕의 작품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의 천재성이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까닭이 뭔지는 잘.. 모른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세운 천재적인 과학자라는 건 알아도, 상대성이론의 정확한 내용이나 의의를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기왕에 인물에 대해 잘 모르는 거, 알프레도 히치콕의 명작을 본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편하게 영화를 관람하기로 했다^^;;
그래도 의미추론은 어떤 식으로든 풀어내면 풀어낼 수 있는지라, 영화 종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 '새'의 의미에 대해 추궁해보았다. 결론은 '새=공포'라는 것. 작품의 해석에 딱히 정답은 없겠지만, 일단 내가 이끌어낸 답은 '공포'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물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보다는 공포의 본질과 핵심을 짚어내고 그것을 묘사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히치콕이 <새>에서 묘사한 '공포'에서 발견한 몇 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 정체를 알 수 없다
여주인공 멜라니가 처음 새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목격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도심에서다. 영화의 주무대가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보데가 만(灣)으로 옮겨간 뒤로도 새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는 계속 발견되고, 점점 더 심해져서 급기야 사람의 목숨을 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새들이 왜 이런 공격성을 보이는지 사람들은 알 길이 없다. 인간의 이성(理性)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공포가 아닐까.
나치가 독일인들의 불안감을 조성하여 유대인을 학살한 것, 내대니얼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글씨>에서 보스턴 시민들이 헤스터 프린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 모두 사람들의 공포심이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공포는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논리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현상(現狀)을 부추기는 강력한 유인을 제공한다.
# 전염된다
공포의 원인이 명확하다면 해결책은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의 원인이 정확하지 않다면, 인과관계가 불명확하고 비이성적이라면, 그럼에도 무엇인가서 원인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누군가는 외지인인 멜라니가 새를 몰고 왔다고 하고, 누군가는 성경에 나온대로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다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명쾌하지 않다. 그리는 동안 새들의 습격은 점점 더 거세진다.
몇몇 사람의 정신나간 주장으로 여겨졌던 새들의 이상한 행태는, 종국에는 마을 사람들 전체의 불안감을 일으키고 캘리포니아 일대의 다른 도시로도 기현상이 확산된다. 기쁨, 호의, 공감과 같은 긍정적 감정과 달리, 공포라는 부정적 감정의 전염 속도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사람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한다.
# 그럼에도 공포의 원인은 명확하다...?! : 끝없는 의심
영화에는 사람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초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미치의 어머니인 브랜도를 언급할 수 있다. 미치의 옛 연인이었던 애니는 브랜도가 "아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들의 연애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브랜도는 시종일관 미치를 방문한 외지인(멜라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후회의 대상이 과거의 시점에 있다면, 의심과 불안의 대상은 미래의 시점에 있다. 현재로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 그것이 의심과 불안의 기저에 깔려 있다. 따라서 병적인 의심과 불안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미래에 예상되는 손실을 예방하기 위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공포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치와 멜라니가 새를 파는 어느 매장에서 조우(遭遇)하는 것부터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미치는 창문 파손 건과 관련해서 멜라니를 법정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같은 법정에 있었던 멜라니는 당시 변호사로 법정에 변론했던 미치를 기억하지 못한다. 같은 법정에 선 적이 있지만, 여자를 기억하는 남자와 남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미치'라는 미지의 남자를 골리기 위해 그의 신상을 캐낸 뒤, 멜라니가 잉꼬 한 쌍을 들고 보데가 만을 방문한다는 이야기의 흐름 자체에서 주위의 의심을 살 만한 기묘한 이들의 관계가 보데가 만까지 연장됨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나 새를 파는 매장에서 미치에게 '카나리아'를 '잉꼬'라고 둘러대는 멜라니는 이후로도 사소한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는데, 이 역시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요소로 작용한다.
아직까지도 정리되지 않는 것이 영화에서 미치의 옛 연인으로 연기했던 '애니'의 역할이다. 브랜도와의 불화로 미치와 헤어진 후에도 그의 본가가 있는 보데가 만에 정착해 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특히나 미치와의 사랑이 다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영화 자체의 플롯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졌다는 느낌도 받았고 재미도 있었지만, 단 한 편의 작품만으로 알프레도 히치콕이라는 영화감독의 작품세계 전반을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차차 그의 작품을 기회가 있다면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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