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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터널 애니멀스 : 교차와 오버랩의 향연일상/film 2016. 12. 29. 01:51
<녹터널 애니멀스/스릴러, 멜로/톰 포드/수잔(에이미 아담스), 에드워드&토니(제이크 질렌할), 바비(마이클 섀넌)/116>
모처럼 라이브톡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보고 왔다. 원래는 원격으로 중계되는 일반 라이브톡으로 보려다가, 상영시간이 가까워지니 빈 자리가 많이 나서 현장 라이브톡을 봤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니 평론가의 해설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과는 다른 관점의 해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내려가기에 앞서, 이 포스팅에 적는 것은 내 말로 풀어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을 활용하였고, 동시에 내가 느낀 바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영화의 원제 <Nocturnal Animals>는 극중에서도 소개되지만 우리말로 하면 "야행성 동물"을 뜻한다. 영화에서 소설을 읽는 여주인공 수잔은 오랫동안 불면에 시달렸던 인물로, "야행성 동물"은 그녀의 전 남편 에드워드가 붙여준 별칭이자,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보낸 자전적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또한 이동진 평론가에 따르면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수잔을 특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잔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 일반을 지칭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감독이 왜 액자형으로 시나리오를 짰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이 역시 상영 후 해설을 들으면서 알 수 있었는데, 결론은 매우 단순했다. 원작(소설)에서 액자형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영화를 보기 전에 가능하면 사전지식 없이 보러가기는 하는데, 원작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갔다;;
여튼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은, 소설의 주제의식과 소설을 각색한 영화의 주제의식이 약간 다르다는 점이다. 과거(수잔과 에드워드가 함께하던 19년 전), 현재(갈라서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그리고 극중극(작가였던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보낸 소설 속 이야기)이 교차된다는 점은 소설과 영화 모두 동일하다. 수잔에게 보내진 소설 속 주인공인 '토니'의 극적인 사건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수잔이 심경 변화를 경험한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원작소설 <Tony & Susan>에서는 작가와 독자가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여주인공 수잔이 소설을 매개체로 자기자신을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둔다. 19년 전 수잔에게 상처받았던 에드워드는 '토니'라는 분신(分身)으로 나타나며, 수잔은 토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기심과 오만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참회한다.
이는 감독과 동시에 시나리오를 쓴 톰 포드가 자신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가정주부이자 영문학강사로 소개되는 수잔이 영화에서는 미술관 관장으로 나오는 것, 또한 소설에서는 에드워드가 재혼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19년간 재혼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 역시 톰 포드가 의도적으로 변용한 부분이다.
<잘 차려입은 관능적인 모습의 수잔(에이미 아담스) 뒤로, 비만한 나신의 여성이 하나의 조소(彫塑)처럼 전시대 위에 엎드려 있다>
영화는 조금은 충격적인 오프닝과 함께 시작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과체중의 여성들이 기쁨에 겨워 춤을 추는 장면이 연이어 나온다. 클로즈업된 장면과 전신이 담긴 장면이 교차하며.. 이에 대해서도 해설에서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요컨대 영화가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상 그리고 남성상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성애자이며 얼마전 결혼을 한 감독 톰 포드의 개인적 성향이 다분히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 여성상
기존 관념에서 여성은 미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고 가정내에서 남편을 보조하고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그러나 영화 초반의 파격적인 화면들은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여성들이 행복한 얼굴로 춤을 추는 모습을 포착하여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여성상에 물음표를 던진다. 또한 수잔은 배우자에게 남성으로서의 출세를 요구하는 한편 자기 스스로도 명예욕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전통적 여성상과 현대적 여성상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 남성상
19년전 수잔이 에드워드를 떠난 결정적 이유는 에드워드에게서 전형적인 남성성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 야망이 바로 그것이다. 이 남자가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의 지위를 더 끌어올려줄 수 있을지 의문을 느낀 그녀는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보낸 소설 <야행성 동물>에서 '토니' 또한 에드워드와 비슷한 모습을 공유한다. '토니'는 자신의 가족이 납치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의 유약함을 자책하고, 형사(바비)가 범인들에 대해 복수의 기회를 줄 때조차 '총 쏘는 행위'를 주저한다. 에드워드와 '토니' 모두 남성으로서의 강인한 모습을 결여하였고, 그로 인해 상실을 경험한 인물들이다.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 作>
<데미안 허스트(Demien Hirst) 作>
나는 영화의 오프닝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루시안 프로이트의 작품들이었다. 수잔처럼 실제 사람을 전시회에 활용하지는 않았지만, 루시안 프로이트는 추(醜)를 예술영역으로 끌어들여 온 예술가다. 수잔과의 차이점이라면 여성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수잔과 달리, 루시안 프로이트는 여성과 남성 모두 캔버스의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또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도 등장한다. 삶과 죽음의 헛됨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그의 작품을, 영화를 관람한 이라면 아마 기억할 것이다. 영화에는 결박된 채 화살에 꽂혀 있는 소의 형상을 바라보는 수잔의 모습이 나온다. 이밖에도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이 역시 의도적으로 설치된 예술작품들일 것이다.
비화를 덧붙이자면, 감독인 톰 포드는 원래 구찌(Gucci)의 디자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패션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때문에 아마 이런 미적 감각을 영화에서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색에도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그는 영화에서 특히 "빨강"이라는 색을 곳곳에 사용한다. "빨강"은 과거와 현재, 소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동시에,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받은 상처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붉은 벽>
<붉은 조명>
에드워드의 상처란 그럼 정확히 무엇인가? 에드워드가 '토니'라는 인물을 빌려 자신의 유약함을 극복해가는 과정, 소설이라는 무기(武器)를 통해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복수의 일격을 가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인 만큼 에드워드가 지닌 상처를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대한 이해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도 말하듯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정형화된 해석을 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열린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도 모처럼 라이브톡을 방문한 만큼 쭉 정리해본다..^^;;)
# 사랑을 저버린 수잔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것과 달리, 수잔은 시간이 갈수록 에드워드를 향한 불만과 권태를 느낀다. 별 볼 일 없는 에드워드와 헤어질 것을 종용한 어머니의 회유에 단호히 반박을 했던 수잔이지만, 결국 그녀는 세속적 성공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남편을 선택한다.
# 낙태
그녀는 에드워드와 결별한 뒤 에드워드의 아이를 낙태한다. 이는 그녀에게 죄책감이라는 올가미를 씌우고, 그녀가 직원이 건넨 휴대폰에서 갓난아이의 영상을 보는 순간 죄책감은 절정에 달한다. 보모를 감시하는 앱이라며 직원이 보여준 영상에, <야행성 동물>에 나오는 범인의 기괴한 얼굴이 발작적으로 등장하는 것.
# 에드워드의 꿈을 비웃은 수잔
에드워드가 복수를 결심한 가장 결정적 이유다. 작가지망생인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여러 차례 초고를 보여주지만, 수잔의 반응은 매번 시큰둥하다. 에드워드가 되도 않는 헛수고를 들이고 있다는 듯이.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이별 후 19년이 지나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보낸 초고(初稿) <야행성 동물>을 읽으면서 수잔이 공포감을 느끼고 '강해진 에드워드'를 발견한다는 것은 한 편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완결된다.
<제73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한 톰 포드와 배우들>
# 기억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기억을 깜박 잊는 모습들이 나온다. 자신이 미술관에 어떤 작품을 구입했는지 잊어버리고, 회의에서 직원에게 지시한 사항까지 잊어버리는 수잔, 범인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소설 속의 '토니'. 사실은 기억을 잊은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기억을 밀어낸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기억이 되살아남으로써 자신의 정체 (특히 급소와도 같은 약점)을 파악하게 된다.
# 촬영기법
아무래도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기법이 잦은 교차나 오버랩 장면이다. 에드워드-토니-수잔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묘사하기 위해 교차와 오버랩은 가장 자주 활용되는 촬영기법이다. 클로즈업 또한 자주 사용되는데, 특히 어떤 깨달음을 얻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포착할 때 활용된다. 의도적으로 화면에 한 명의 인물만을 담는 방식, 마치 숨어있는 감시자의 시점(視點)에서 등장인물을 고립시키는 방식의 촬영기법은 인물이 처한 고독감, 불안감, 초조함을 극대화한다. 촬영기법과는 별개로 소품 면에서 "빨간 소파"는 영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힌트다.
'스릴러'로 무 자르듯 장르가 구분되기는 했지만, 수잔이 심경변화를 겪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영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스릴러,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색다른 스토리를 원한다면 단연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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