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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 하즈랏 니자무딘(Hazrat Nizamuddin Dargah)여행/2017 북인도 2017. 2. 16. 22:00
정말 동네 종교시설 같았던 이곳..
근처의 푸라나 킬라를 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과욕을 부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인도 곳곳이 스케일이 큰지라 사진 속의 관광지를 생각하고 갔다가, 생각보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푸라나 킬라는 붉은 성과 마찬가지로 기회가 닿는다면 남는 일정에서 보기로 했다. (하지만 푸라나 킬라 역시 끝끝내 들르지 못했다)
대신 그보다 걸어갈 만한 거리의 니자무딘 사원을 들르기로 했다. 니자무딘 사원은 이슬람(수피즘) 사원이다. 붉은 성에서 행사가 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니자무딘 사원에서도 무슨 종교행사가 열리는지, 동네 분위기가 매우 분주했다. 모든 남자들은 야르물케와 비슷한 흰 모자를 쓰고 있었고, 장미꽃을 파는 가게들이 성업 중이었다. 후마윤의 묘에서 불과 한 블록 건너왔을 뿐인데, 동네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동네 초입부터 이방인이 발을 들일 만한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머리에 쓴 흰 모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이 휴일이라는데 이날은 금요일도 아니었는데 무슨 종교행사가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사원에서 기도를 올릴 때 꼭 무언가를 바리바리 챙겨간다
곳곳에 장미 파는 가게가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이것도 아마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성물인 것 같다
정육점마다 양고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입구조차 찾지 못해서 그냥 지나쳤다. 동네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서야 좀전에 사진을 찍었던 간판 밑의 협소한 문이 사원 입구라는 것을 알았다.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갔다. 이맘처럼 보이는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깎듯하게 안내하기 시작했다. 인도에는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여하간 오전에 자이나 사원을 들른 뒤로 두 번째 맨발이다. 미로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복도가 좌우로 얼키설키 연결되어 있었다. 빛이 잘 들지 않아 더 미로처럼 느껴졌다. 사원을 거처 삼아 살아가는 걸인들이 어두운 복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기로 한 게 잘한 건가 염려되기 시작했다.
완전 동네 골목
무의식적으로 여성이 중앙에 나온 사진을 찍었는데, 행여 종교적으로 문제가 될까봐 가능하면 여성 사진은 찍지 않으려 했다
간신히 발견한 사원의 입구
얼마나 걸었을까 니자무딘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내가 정말로 니자무딘 사원에 들어왔다고 느낄 수 있었던 건 쿠란의 노랫가락을 듣는 순간부터였다. 앞서 들른 자마 마스지드도 이슬람교 사원이었지만―참고로 '마스지드'가 이슬람교의 종교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곳을 '니자무딘 마스지드'라고도 한다―워낙 관광지로 유명하다 보니 종교적 색채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에 비해 니자무딘 사원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신앙행위가 이루어지는 곳 같았다. 여행책자에 소개된 곳이기는 했는데 전혀 관광지가 아니었고, 외부인도 나 단 한명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기도를 올리거나 장미를 들고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내게 복도를 안내해준 신학자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사원의 좀 더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처음부터 신학자라고 판단했던 건 온통 흰색 복장에 나름 권위가 느껴지는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원에 따로 마련된 작은 공간에 들어가니, 웬 관 같은 것 위에 융단을 덮어 놓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사람들이 들고 온 장미꽃을 공중에 뿌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질겁했다. 내가 들고 온 장미꽃을 거의 던져버리다시피 옆사람한테 떠넘겼다.
그러니까 처음 내가 기도하는 공간에 들어서서 생각했던 것은 내가 누군지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장례식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경을 칠 일이었다. 호기심에 복잡한 복도를 지나 깊숙한 사원 안까지 들어왔지만, 이건 정말이지 경거망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를 안내했던 신학자에게 저게 무엇이냐고,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발음을 알아듣기 힘든 힌디어와는 분명히 다른 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얘기하는데, 신을 경배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좀전의 놀라움이 금방 가시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성시되는 수피 수행자(니자무딘)의 묘소라고 한다)
나를 식겁하게 했던 문제의 묘소
옆에 서 있던 신학자한테 사진을 남겨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흔쾌히 찍으라고 한 것 보면 금기시되는 대상은 아닌 듯하다
사원의 내부가 협소해서 망원렌즈로 담기에 버거웠다
기도를 하러온 사람들
그때 신학자가 불쑥 장부를 내밀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십일조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컨대 기부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앞서 장부에 이름을 넣은 사람들의 내용을 쭈욱 훑어보니 예외없이 3000루피씩 기부를 했다. 결국은 여기서도 기승전루피인 것인가;;... 3000루피를 낼 순 (당연히) 없었지만(상대는 최소 1000루피를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기부를 하면 복이 온다는 말에 소액을 기부했다.
니자무딘 사원에서의 경험은 사실 좀 특이했다. 놀라기도 했지만, 정말 현지인이 되어 잠시 동안 그들의 신앙세계를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모두 경건했고, 확성기를 통해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쿠란 가락은 아득했다. 정말 신기했다.
종교에 사용되는 물건을 파는 소년
나는 사원에 입장하기 전에 미리 장미꽃 한 접시를 샀다...
라기보다는 사원에 들어가려면 필요하다면서 내 손에 접시를 쥐어주더니 돈을 달라고 했다^―^;;
인도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라 그런 식으로 예정에 없던 돈이 새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복도 모퉁이마다 종교미술이 보인다
천의 문양
니자무딘 사원을 나오고 머리에 쓰고 있던 흰 모자를 벗는데, 어찌된 일로 동양인이 보인다. 모녀로 보이는 사람인데 나를 발견하고는 마치 나를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을 건네온다. 니자무딘 사원에 가고 싶은데 이 동네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고 위험해 보이는데, 니자무딘 사원은 어땠느냐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중국인 모녀였는데 사리(인통여성 전통 복장)를 사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사리를 사러 여기까지는 왜 왔는고... 두 모녀가 부탁해서 니자무딘 사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하도 골목 분위기가 불안하다고 하길래, 결국은 가지 않는 걸 추천해주었다. 더군다나 사리를 사러 왔다고 하는 바에야.. 사실 나도 으스스했던 건 사실이다.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상당히 묘한 분위기―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무슬림들 특유의 종교적인 분주함이었던 것 같다―가 있었던 데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업중에 발표를 했던 것 외에, 이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한꺼번에 눈총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복도 한 구석에 자리잡고 계신 남다른 포스의 할아버지
사원의 육중한 철문과 양각으로 새겨진 문양
수피즘의 상징문양이 각인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리만치 겁이 없었다.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질수록, 더욱 과감해졌고 아무렇지 않게 사원을 누비며 사진을 남겼다. 인도로 넘어오면서 영사관에서 자동으로 보내온 문자에는 인도 전역이 여행 유의지역이며 사람들이 밀집하는 장소에는 방문을 삼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오늘 내 행동이 잘한 일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합리화하자면, 여행책자에 소개된 관광지인데다 사원을 둘러보면서도 신상의 위험을 느끼지는 않았다. 사실 중국인 모녀에게도 니자무딘 사원에 들를 것을 권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본인들이 지레 겁을 먹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을 권했다. (어쨌든 인도여행을 다 합쳐 가장 느낌이 기묘했던 곳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할 만한 곳으로 소개한 책들이 있는 걸 보면 지금까지도 선뜻 추천할 만한 곳인지 모르겠다)
니자무딘 골목을 나오는 길에 목격한 코끼리
자이푸르도 아닌 델리에서 코끼리는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인도는 잠시 방심하는 사이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매연 가득한 도로에 코끼리라니..동물학대 같기도 하다
웃긴 사실은 내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니 모녀 중의 딸이 나한테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한 것이다. 인도사람들도 처음 호객행위를 할 때는 대개 '곤니치와'라고 하지만, 더러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 나면 '안녕하세요!!' 아니면 '어디 가요?' 하고 말한다. 나와 전혀 다른 생김새의 사람,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내 귀에 익숙한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이질감이 들기도 또한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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