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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 버스 위에서(On the Bus)여행/2017 북인도 2017. 2. 18. 15:51
비좁은 공간에서 망원렌즈까지 들이대니 사진이 썩 좋지 않다
썬글라스를 쓰고 폼을 잰 채 탑승한 아이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람들
인도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먼저 4일차의 일지는 저녁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파테뿌르 시크리에서 아그라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버스 위에서 나눈 대화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나는 버스 위에서의 일을 가장 먼저 일지에 써내려갔다.
아그라행 버스가 거의 만석인 상태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근처에 백인 청년 두 명이 서서 가는데, 둘의 대화를 들어도 도통 어느 나라 말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나중에 두 청년 중 한 명과 옆자리를 공유하게 되면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알고보니 헝가리에서 온 친구였다. 정확히는 헝가리에서 온 게 아니라 지금은 중국에 사는 헝가리인이었다. 이름은 G. 영어식으로 바꾸자면 George가 아닌 Gregory에 해당하는 헝가리 이름이었다. 그 뒤의 이름도 불러주었는데, 아예 따라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었다.
여하간 파테뿌르 시크리로 갈 때와는 달리, 되돌아오는 길은 유달리 지체가 심했는데, 길어진 길 위의 시간만큼 대화도 길어졌다.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니 어머니는 아이슬란드에서, 아버지와 남형제 중 한 명은 루마니아에 살고 있단다. 그야말로 다국적인 가족이었다.
무례한 질문일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왜 아이슬란드까지 나가 있는지 물었다. 헝가리와 아이슬란드라니 아무런 연결고리도 잡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외과 의사인데 공산권 붕괴 이후 헝가리에 있는 동안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문제는 열악한 근무여건에 비해 박봉이었다고. 결국 헝가리에서의 의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의사에 대한 처우가 우수한 아이슬란드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제 궁금한 건 본인이야말로 왜 중국으로 갔느냐는 사실이었는데(이거야말로 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본인이 사회학 내에서 유대인 사회와 관련된 공부를 했었고, 지금은 북한의 통치체제에 대한 관심이 있어 남한에서 사회학 분야의 박사과정을 밟고 싶다고 했다. 남한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니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어딜 가든 날 보고 중국(차이나)? 아니면 일본(쟈빵)?이라고 물어올 뿐인데, 옆자리에 앉은 헝가리 청년이 다름 아닌 한국을 잘 알고 있다니.
당장 내년에 한국에 들어와 1년 동안 일을 한다길래, 한국의 근무환경이 매우 경쟁적인 것은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잘 안단다. 중국에서 이미 실감하고 있다고. 지금은 시안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중국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야자 시간이 있다고 했다. 교육방식이나 대인관계가 나이에 따라 위계적이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심이 크다는 것까지 꿰뚫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러면서 덧붙여서 하는 말이 중국은 정치체제만 일당독재일 뿐 경제와 사회가 돌아가는 작동방식은 미국보다도 훨씬 자본주의적이라고 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곳이 중국이라며..;;
그 동안의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G는 친구와 함께 라자스탄 일대를 둘러보고 아그라에 오는 길이라고 했다. 푸르 시리즈(조드푸르, 자이푸르, 우다이푸르)를 돌고 이틀전 자이푸르에서 왔는데, 기차로 6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자이푸르에서 아그라까지 오는 데 6시간이면 정말 최대한의 시간으로 온 셈이다;;
뭔지는 몰라도 똑똑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나이도 묻고 싶었지만 차마 나이까지 물으면 너무 한국사람 티내는 거 같아서 묻지는 않았는데, 여하간 예의 바르고 준수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처음에 생긴 것만 봐서는 독일사람 같기도 해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있을 것 같아 말을 걸지 말지 고민했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다. 나 역시 작년에 겪었던 일이며, 군 복무를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 보니 대학 학자금에 대한 얘기까지 나왔다. 내가 대학원 진학과 관련된 얘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거기까지 흘러갔던 것 같다.
한편 뜬금없이 내게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스캔들에 대해서 물어서 내심 놀랐다. 자랑스럽지 않은 일을 외국인이 알고 있어서라기보다 헝가리 사람이 근래의 한국 이슈를 알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반면 나는 헝가리의 최근 이슈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G의 질문에 대해서는 사건의 내용 자체를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해서, 파면 팔수록 더욱 알 수 없는 부패 스캔들이라고만 대강 이야기했다.
얘기가 그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군부통치를 했던 지도자의 딸이 어떻게 국가원수가 될 수 있었는지 물었을 때는 정말로 난감했다. 요컨대 지금의 남한은 민주주의 사회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유도한 것도 아닌데 마치 한국사회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먼저 날카로운 질문을 해온다;; 우선 한국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고(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상세히 알고 있었다), 세대별로 바라는 리더십이 다르다는 점 등등을 언급했다. 나는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적인 현상 정도만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서 예상치 못하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반면 나는 헝가리에는 비슷한 사회문제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더 이상 최근의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근래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민문제에 대해서 물었는데, 역시나 뭔가 설명하기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계속 나만 난감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 G가 말하길, 헝가리는 국경을 완전히 봉쇄해서 더 이상의 이민자 유입은 없고,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이슈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라고 요약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헝가리라고 EU에 가입한 뒤 상황이 개선된 건 없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중장년 세대는 동독과 소련의 생활습관이 베어 있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영미권 문화에 익숙하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헝가리 국내의 일자리 상황이 좋지 않으니, 우수한 인력들이 다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이민 문제를 이야기할 때, 헝가리로 들어오는 무슬림보다 영국과 독일 등지로 빠져나가는 인구 유출이 더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말했다.
오지랖이었던 게, 나는 헝가리의 영토가 지금은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된 이유, 그러니까 오스트리아와 연합국인 합스부르크로 통치할 때 다스렸던 영토에 비해 이토록 영토가 줄어든 경위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저런 얘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두 시간 가량 버스 안에서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아그라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G, 언젠가 어디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과시함 없이 차근차근 들려준 그 친구의 논리정연한 이야기보다, 내 영어가 막혀도 경청하고 기다려주던 예의바른 태도가 더 기억에 남는다. 파테뿌르 시크리를 둘러보며 느꼈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보다 더 값진 대화를 버스 위에서 나눴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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