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일즈맨의 죽음 / 아서 밀러 / 민음사>
아버지!
전 오늘 손에 만년필을 쥐고 11층을 달려 내려왔어요.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어요. 그 사무실 건물 안가운데에서 말예요.
그 건물 한복판에 멈춰 서서 저는, 하늘을 봤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봤어요.
일하고 먹고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우는 그런 시간들을요.
그러고 나서 만년필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죠.
뭐 하려고 이 빌어먹을 놈의 물건을 쥐고 있는 거야?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왜 여기 사무실에서 무시당하고 애걸해 가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건데!
전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
……
저는 사람들의 리더가 되지 못하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일해 봤자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세일즈맨일 뿐이잖아요.
저는 시간당 1달러짜리예요!
일곱 개의 주를 돌아다녔지만 더 이상 올려 받지 못했어요.
한 시간에 1달러!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저는 더 이상 집에 상패를 들고 들어오지 못하고 아버지도 그런 건 기대하지 말아야 해요!
오랜만의 희곡이었다. 희곡은 휙휙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주인공 '윌리'의 자아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윌리의 대사 중간중간에 과거를 회상하는 대사나 '형님'―몰락한 세일즈맨인 '윌리'와 달리 사업가로서 자수성가한 '벤'―의 대사가 불쑥불쑥 등장하다보니 좀 헷갈리기도 했다. 동시대에 이름을 떨친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나 「유리 동물원」이 책으로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실제로 연극을 관람하게 된다면 아서 밀러의 희곡이 더욱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상연중일 만큼 유명한 연극이라고 하니, 기회가 닿는다면 관람하러 가야겠다.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0) 2017.06.10 기사단장 살인(이동하는 메타포 篇) (4) 2017.05.29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0) 2017.04.17 개미와 공작 (0) 2017.04.16 물고기는 알고 있다 (0) 2017.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