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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알고 있다일상/book 2017. 4. 9. 19:32
진화는 복잡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닌 것처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아니다. 적응이 동물들에게 최적화된 기능을 선사하는 것 같지만, 동물이 환경에 안성맞춤으로 재단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은 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지질변화, 그리고 끊임없는 침식은 진화의 방향을 변화시킨다. 이런 불안정성을 차치하더라도, 자연은 완벽히 효율적이지 않으며 늘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비근한 예로, 인간의 충수(맹장)과 맹점과 사랑니를 들 수 있다.
신피질이 없는 동물도 의식을 할 수 있다면, 신피질이 의식의 전제조건이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의식이 없다는 주장도 근거를 잃게 된다. 에모리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로리 마리노는 이렇게 말한다. "복잡한 인식능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신경해부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물고기의 통층인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느러미가 없다는 이유로 인간의 수영능력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열기구는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다" … 포유류의 신피질에 필적하는 물고기의 뇌 영역은 겉질이다. 영장류의 신피질보다 계산능력은 떨어지지만, 겉질은 놀라운 다양성과 복잡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피질을 대신하여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인간에 의해 붕괴된 문화는 복구될 수 없다. 문화란 유전자에 코딩되는 게 아니어서, 일단 상실되고 나면 문화정보를 다시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개체수를 다시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집단기억을 이미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에서 생물리학을 담당하는 히앙카를로 데 루카는 말했다. 밀렵과 무분별한 사냥이 금지된 후에도 많은 동물 집단들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규모 포경이 금지된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멸종해가던 북대서양참고래, 북태평양 서쪽의 귀신고래, 흰긴수염고래가 회복세를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상업적 어획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많은 물고기들이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이 날개 돋힌듯 팔린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의 일이다. 호응이 뜨거웠던지 첫 편에 뒤이어 후속편까지 발간되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표현을 쓰면 물의 얼음 결정체가 아름다운 대칭을 띠고, 반대의 경우 엉성한 모양을 띤다는 그럴듯한 주장을 담은 책이었다. 때마침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던 시기였으니, 덩달아 조명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비교적 최근에서야, 「물은 알고 있다」에서 다루는 내용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기사가 국내에 보도되었다. 얼음 결정체라는 것이 수시―아마 몇 백 분의 1초 수준이라 했던 것 같다―로 바뀌기 때문에 긍정 또는 부정에 반응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저자는 수만 개의 얼음 결정체 사진 중 자신의 이론에 들어맞는 사진을 자의적으로 추리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서 '고기' 자만 빼면 「물은 알고 있다」와 제목이 같다보니, 맨 처음 이 책을 볼 때 그냥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지은 책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책에서 언급하듯 '어류'는 파충류나 포유류, 조류에 비해 다양한 종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연구는 진행되지 않은 종이다. 때문에 저자는 다양한 사례연구를 제시하고 있지만, 정확히 어떠한 과학적 매커니즘에 의해 물고기가 특정 행태를 보이는지에 대해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책에서 또한 언급하듯, '물 속의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삼기 부적절한 것과 마찬가지로 '땅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를 떠올리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 그 동안 '인간들'은 자신들이 뭍에 산다는 이유로 습관적으로 뭍의 관점에서 물고기를 바라봤다.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가 팔딱대는 모습, 허공에서 입과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모습, 식탁에 올라온 멍한 눈빛의 생선... 인간이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의 모습이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물고기가 지능이 없어 보였던 것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물속이 아닌 뭍에서만 물고기를 봐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들이 생선을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지적하며, 그만큼 물고기를 생물계에서 하등동물로 취급되고 있음을 언급한다)
여하간 물고기를 정말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물 속에서 물고기를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물 속에서 오랜 시간 관찰을 하기에는 생물학적 한계가 있다보니, 물고기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고 편견은 늘어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다루는 여러 주제들―물고기의 사회 형성, 감정 표현, 협동 등등―은 '뭍의 관점'이 아닌 '물의 관점'에서 물고기를 바라보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 또한 희한하게도 물고기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관점을 취해 왔던 것 같다. 그저 몸에 각인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 별 생각 없이 물의 흐름이나 온도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 등등... 고릴라 사회에 서열이 있고, 꿀벌의 세계에 협력이 있다는 식의 고차원적인 체계가 물고기 세계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진화생물학에서 '우열'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라는 이 책의 관점은 신선했다. 더불어, 무차별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이야말로 뒤떨어진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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