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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일상/book 2017. 4. 17. 00:03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우치다 타츠루 / 갈라파고스>
좋은 입문서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전문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을 다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좋은 입문서는 먼저 첫머리에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에 대해 묻습니다.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 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포스트구조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구조주의를 상식으로 간주하는 사상사적 관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시대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언젠가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구조주의가 상식인 시대에 머물러 있으며 거기서 빠져나올 만한 결정적인 계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구조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 구조주의적 견해를 이용하지 않고는 구조주의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출구 없는 무한 고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고리 속에 갇히는 것'이 바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와...체증이 가신 느낌이다. 철학은 원래 잘 아는 분야도 아닌 데다 구조주의 철학은 더더군다나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대학 때 몇 번 철학강의를 찾아들은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독일 철학 강의는 넘치는데 프랑스 철학을 가르치는 강의를 찾기는 어려웠다. 프랑스 철학을 알고 싶기는 해서 책도 몇 번 봤었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번역투의 글들과 난해한 표현, 어휘들 때문에 몇 장 페이지를 넘겨보지도 못하고 질려버렸다'a';;;ㅎㅎㅎㅎㅎ 모름지기 철학은 가능한 원전을 찾아 읽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하면서도, 아예 모르는 상태로 있기보다는 입문서라도 읽어야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고 총 여덟 명의 철학자를 다룬다.
1. 구조주의의 전조 :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2. 구조주의의 출발 : 소쉬르
3. 구조주의의 집대성 :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고작 입문서를 읽고서 각 철학자의 철학을 운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에 대한 철학은 어렴풋이 귀에 익었고, 소쉬르 부분부터가 생소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흥미를 불러 일으켰던 철학자는 레비스트로스였다. 증여(주고 받음) 관계는 영원히 비대칭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호혜적 관계 속에서 사회가 변화한다는 의견이 가슴에 확 와닿았다. 시간이 난다면 레비스트로스의 「붉은 열대」를 꼭 읽어봐야겠다. (사실 한 번 읽어보려고 대출했는데 몇 장 넘겨보지도 못하고 반납했다^^;;)
사실 철학이라면 나도 먼저 손사래부터 친다. 그 다음으로 실용적이지 않은 탁상공론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다음은 저자인 우치다 타츠루가 글을 맺으며 남긴 말이다.
긴 세월을 돌아서 다시 책을 읽어보니 이해하기 힘들고 사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난해했던, 구조주의와 구조주의자들이 '말하고 싶어했던 것'들이 술술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컨대 레비스트로스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살아요'라고 한 것이며, 바르트는 '언어 사용이 사람을 결정한다'라고 한 것이고, 라캉은 '어른이 되어라'라고 한 것이며, 푸코는 '나는 바보가 싫다'라고 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저렇게 쉬운 질문들에 대해 뛰어난 두뇌의 철학자들이 매달려 어려운 용어로 답을 풀어놓은 것은, 어찌보면 소쉬르―이 책에서는 '구조주의의 아버지'로 묘사된다―가 말했듯 언어활동이 인위적으로 개념간 경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점이 아닌가 싶다. 「소피의 세계」만큼이나 명쾌하게 풀어쓴 철학 입문서였다. 물론 원전을 읽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구조주의의 세계에 편안히 발을 담그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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