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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 별 아래 걸터앉아(塔克拉玛干沙漠, 敦煌)여행/2017 중국 甘肅 2017. 6. 29. 01:06
지금까지도 이날의 미스터리는 사사건건 기록으로 남기기 좋아하는 내가 이날 밤만큼은 아무런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후 7시쯤에 야영지에 도착해 또다른 산등성이에서 사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친구 4인방은 우리와는 약간 동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는 데 몰두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쉬는 기분으로 산등성이에 올라앉아 부드러운 석양빛을 쬐었다
모래가 지닌 뜨거운 열기는 벌써 미지근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전에 막고굴을 둘러보기에 앞서 H와 결정했던 사항 가운데, 밤이 되면 사막에서 야영하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밍샤산과 월아천을 둘러보고, 몸 구석구석에 들러붙은 모래를 씻어낼 겨를도 없이, 인근의 좀 더 깊은 사막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흰 색 텐트 수십개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H와 나는 이곳에서 중국인 젊은이 4명을 만났다. 장허, 타오루, 리하이쥔, 차오위에쥔.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이 친구들은, 원래는 우한에 살고 있는데 입사를 앞두고 축하할 겸 간쑤성으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렌트카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맡기다보니 둔황에만 3일을 머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근방으로 야영지가 군데군데 퍼져 있었다
아마 서로 다른 숙소들끼리 연합해서 운영하는 듯하다
우리와는 다른 산등성이를 오른 야영객들, 그리고 어김없이 나타나는 다르촉
나중에 야영을 하게 됐을 때, 중국애들이랑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모든 내용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밑천이 금방 드러나는 서로의 한국어-중국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첨밀밀(甜蜜蜜)>이라는 노래를 '안다고' 했을 뿐인데, 장허가 꼭 노래를 부르라고 하도 권유해서 첨밀밀까지 불렀다-_-ㅋㅋㅋㅋㅋ
뭐...광둥 노래 부르는 친구(특히 타오루)도 있었고..제각각 재밌게 흥을 돋웠다ㅋㅋ
박사과정을 마쳤다고는 해도, 나이는 나보다 만 나이로 두 살이나 어리다. H가 부연설명해주길, 중국은 한국보다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고 그만큼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도 빠르다고 했다. 한참 풋풋해 보이는 얼굴을 한 이 친구들이 벌써 박사라니, 잠시 부러웠다. 이 넷 가운데 리하이쥔이라는 친구는 유일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돼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더니, 앞으로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것에 만족하냐고 물으니, 박사 학위로 취업을 해서 더 큰 수입을 갖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문에 대한 답변 대신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와서 내심 놀랐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석양이 짙어지는 하늘
중간에 굉장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시골에 있는 옛날집들 보면 도대체 왜 창문이 없는 거야?
창문이 많을 수록 세금을 많이 떼어간다는 장허의 우스갯소리..-_-
다시 진지해지더니, 워낙 이곳의 건조한 모래바람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며 추측해 보았다
하기야 여기 바람이 건조하고 거세기는 하더라
20대 후반의 내가 보기에도 (또 중국인들의 얼굴이 더 동글동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중국친구 4인방은 유달리 앳되어 보였다...ㅠ
게다가 한참 앳되어 보이는 대학원생들이 내게 연방 술을 권하니 느낌이 묘했다(진짜 맥주로 배터지는 줄 알았다)
어쨌든 짧은 대화로 미루어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솔직히 내가 중국에 머무르면서 짧은 순간 마주했던 중국인들 모두 나이스한 사람들이었다
H와 나, 장허, 타오루는 새벽 두 시 반까지 남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중국어는 전혀 못하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H가 내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그런데 이 두 친구는 우한의 대학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서로의 고향이 3600km나 떨어져 있단다. 다름이 아니라 장허는 베이징, 타오루는 윈난이 고향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대학교는 대부분 기숙생활을 한다는 점 때문에 서로 금새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가 채 안 되는데, 저렇게 먼 거리를 두고 살아온 두 사람이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니 과연 중국은 정말 거대한 나라다.
오후 9시가 되어서야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더러 행동이 거친 사람, 시끄러운 사람―일반인이 중국인에 대해 전형적으로 갖고 있는 인상을 풍기는 사람―들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거칠게 다툼하는 부부도 봤다-_-;;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다
잠시만 얘기를 해봐도 이들이 그리 무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오히려 대륙인(?)이라 그런지 만사에 느긋하고 여유로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에 비해 반도에 사는 우리는 오로지 사람만이 자원인지라 훨씬 삶이 타이트하다
타오루보다는 장허가 말이 많은 편이었다. 장허는 내 맥주캔이 비면 곧바로 맥주를 권하고, 싱글벙글한 얼굴로 줄곧 담배를 권하는 것이었다. 너무 낮은 도수에다 계속 물배만 채우는 것 같아서 일부러 적당히 마시고 비웠건만, 맥주를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장허는 란저우 담배를, 윈난이 집인 타오루는 위시(玉溪) 담배를 권했다. 란저우 담배는 맛이 강하기로, 위시담배는 중국에서도 꽤 인기 있는 담배로 알려져 있단다.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서로 경쟁하듯이 권유하는 통에 다섯 개피 정도 줄담배를 피웠다.
야영장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컷!
중국친구 4인방과 이튿날 동틀녁에 단체사진이라도 남긴다는 것이,
당일 나는 쟈위관으로 서둘러 넘어가느라 변변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름도 알고―오로지 차오위에쥔만이 부정확하다―아직 젊은 나이니 언제든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부푼 생각을 해본다
장허는 베이징의 왕징에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이나 한국에 대해 평소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송강호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왕징에 거주하던 한국인 일부의 눈살 찌푸리는 행동 때문에 기분이 나쁜 적이 있다고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한국이 중국보다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부럽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실크로드에 와서 이렇게 광활한 자연과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고 부러워하던 내가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순간 깜짝 놀랐다. H를 통해 대신 연유를 들으니, 중국은 60년대에 모택동에 의해 문화혁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종교나 전통문화에 대한 탄압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장허는 중국이라는 유구한 역사에 공격을 가한 당시의 행위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막에서 발견한 유일한 생명체
영광의 상처..?가 보인다. 귀욤..
밤이 깊어질 수록 하늘에 별도 점점 얼굴을 내밀었다. 장허와 타오루가 사진기로 별을 담는데 정신이 팔린 사이, 나와 H는 사막 산등성이를 올랐다. 올라가던 중 별똥별을 봤다. 별똥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와 H는 순간 어린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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