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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자/로버트 D. 카플란/글누림>
사람은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미숙한 존재인지 불쑥 깨달음으로써 짧게 폭발하듯 성장한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곰팡이가 핀 버스 운전사의 잿빛 얼굴, 그리고 외투와 겨울 모자와 귀마개와 근심에 꽁꽁 싸매어져 있는 다른 루마니아 승객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 부쿠레슈티는 나로 하여금 내가 잃어버린 지난 5년간의 모든 역사를 무의식중에 깨닫게 만들었다.
p.4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도덕적으로 깊이 관여하면서 동시에 심장을 얼음처럼 차갑게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꼭 필요한 섬세한 감성을 유지하며 고통스러운 사건을 기술하는 동시에 그 사건에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을 수 있을까? ···콘래드의 합리주의는 모험담 앞에 무릎 꿇는 일이 없다. 콘래드가 세운 분명한 업적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홀로 곤경에 처한 저널리스트가 무엇을 경험하는가를 압도적인 간결함으로 재현해냈다는 것이다. ···완벽한 관찰을 위해서는 반드시 감정이 필요하지만, 결국에 가서 관찰은 감정을 단념한다. ···미래는 침묵의 내부에, 사람들이 저녁 테이블에서 대놓고 논하길 두려워하는 것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작가는 훨씬 더 쉽게, 그리고 가차 없이 진실을 말하려고 그것을 허구적 이야기로 가장하는 것이다.
p.61
대부분 소매 없는 양가죽 옷을 입은 농노들의 얼굴은 공포로 가득해서 심지어는 아침 빵 대열보다도 훨씬 더 비참해 보였다. “차우셰스쿠, 평화, 차우셰스쿠, 평화” 여전히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울부짖음은 오히려 사방에 도사리고 있던 침묵을 더 강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침묵이야말로 압제를 드러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이다.
카네티는 군중을 ‘궁극적으로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집단의 상징에 열광하는 행위를 지지하려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각자의 개성을 내던진 사람들의 덩어리’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군중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견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다. 설사 그 견해가 틀렸다는 사실이 입증되더라도 군중 안에 있으면 그들이 자신을 보호해주지만, 군중 밖에 있으면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의 견해가 별안간 취약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군중의 일부가 되는 요령은 도덕적 타협이 필요하든 말든 언제나 그 순간 생존하는 것이며, 다음 위기는 그것이 닥쳐올 때만 걱정하는 것이다.
p.68~69
차우셰스쿠의 민족주의적 스탈린주의는 크렘린궁의 승인을 받은 체제요,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히틀러를 패배시킨 스탈린 체제의 직접적 생산물인 소련군 주둔의 대체물이었다. 그 모든 서사시 같은 역경과 희망을 수반한 열강 사이의 투쟁 과정이 그 곳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루마니아에서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제2차 세계대전의 간격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좁았다.
p.70
특히 루마니아 인들은 영토 분할, 외세의 점령, 군주제, 군부독재, 파시즘, 공산주의 등 그 모든 사건을 단 한 세기만에 모조리 겪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뒤로도 그런 사정이 계속될 20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 세기가 끝나갈 무렵에야 그들도 혁명과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될 터였다. 1865년 이래로 자신들의 본토를 대상으로 하는 격렬한 변동을 겪은 적이 없는 미국인들과 달리, 루마니아인들이 심오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상상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p.75
진지한 독서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여행 역시 이제는 전자 시대의 산만함에, 그리고 그 시대를 등에 업고 우리를 짓누르는 온갖 근심에 반대하는 하나의 저항 행동이 되었다. 좋은 책은 끝까지 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이 직접 그 풍경을 더 경험해보고 안으로 들어와 그것을 더 연구해보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여행과 진지한 독서는 지구상을 흐르는 현재 시간을 훼손하는,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주의 집중 시간’에 맞서는 행위이다.
p.76
루마니아는 발칸반도를 여는 나의 마스터키였다. 그 나라는 크기로 보나, 대소(對蘇) 지정학적 위치로 보나, 동남부 유럽의 폴란드였다. 그 나라는 최전방 국경이며, 방대한 영토가 여러 외세의 침략에 의해, 즉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러시아 제국의 국경 말단에 편입됨으로써 갈가리 난도질된 나라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언어 자체에는 라틴계 서유럽을 향한 동경이 담겨 있었다.
p.85
중동과 다른 제3세계 도시들이 그런 것처럼 그곳도 시끄럽고 난폭한 자동차로 가득했다. 침묵의 공산주의 도심은 이미 끝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들의 도심이 되어 있었다. 중년 이하의 보행자는 모두들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젊은이들은 내게 발전 없는 그 나라가 환멸스럽다고 개탄했다. 그들 중 대다수에게는 냉전에 대한 쓸 만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참고의 기준으로도, 비교의 기준으로도 삼을 수가 없었다. 아랍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조상을 닮는다기보다 자신의 시대를 닮는다.” 새 세대의 자율성을 인정하려는 사고방식이기는 하지만, 어떤 이들은 본질주의나 문화적 결정론에 대한 반발로 그렇게 새로운 것만 찾는 위험한 태도가 과거와 과거의 유용한 교훈까지도 모조리 잃게 만들 거시라고 추종하기도 한다.
p.108~109
“당신네 나라에서도 철학적 가치관이 사라지는 상황을 곧 목격하게 될 겁니다. 정치가들이 유리한 입지를 정하려고 점점 더 자신이 실제로 동의하지 않는 신념을 내세우게 될 테니까요. 가치관은 영혼의 거울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가치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지요. 그런데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내적 상상력의 대체물 때문에 영혼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인공지능 장난감, 쇼핑몰 진열창을 채우고 있는 전자제품들, 그 모든 것이 영혼을 담은 지성을 불필요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들이죠. 과학기술의 발전이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이미 목적을 상실했다고 했던 하이데거의 생각이 옳았어요. 현재의 첨단기술이 공공대중을 영혼 결핍의 상태로 이끌고 있잖습니까. 정치가들도 마찬가지고요. 일각에서는 영혼 숭배가 육체 숭배로 대체되고 있는 지경이니까요. 특히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영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관능미를 필요로 하지요. 과학기술이 이미 우리의 이미지를 구축해 놓은 겁니다. 미래에는 과학기술이 점점 더 많은 뇌 기능을 대신하게 될 겁니다. 정신 근육은 위축될 테고, 정치는 훨씬 더 엉망이 되겠죠.
p.115~116
예전에 외무장관을 지낸 루마니아의 정치가 마르체아 지오아나는 2013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루마니아는 자신을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선고받은, 지리와 역사의 희생양으로 보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고, 루마니아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거머쥐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볼 때 외부의 지정학적 세력을 방어하는 최고의 방법은 국내를 잘 통치하는 것, 힘을 키워 자신들의 땅이 제국의 국경지대가 아니라 국제적 소통의 요충지가 될 수 있도록 통치하는 것이었다.
p.139
그러나 이런 논리로 인종과 관련된 논쟁을 종식시킬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라틴족이건 슬라브족이건 백인이건 간에, 개인을 어떤 광범위한 범주로 분류하는 것은 그들을 격하시키는 처사이며, 저들 인도주의 철학자들의 경고와 두려움이 얼마나 옳은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국가와 문명’은 분명 존재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구현하는 개인들만큼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개인은 집단보다 도덕적으로 더 넓게 생각할 뿐 아니라, 개인의 존재 자체는 선천적으로 집단의 존재처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단, 문명, 그리고 인간들의 수많은 집합은 모두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조직된 것이며, 어떤 경우든 보이는 것만큼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집합들이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문명과 다른 집합에 미묘한, 그러면서 동시에 미묘할 것 없는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p.150,~51
루마니아와 히틀러와의 군사적 동맹을 “유럽-아시아 신비주의 연합에 대항해 유럽적인 기독교 자산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p.198
러시아의 소설가 알레산드로 솔제니친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젊은이를 숭배하는 나라는 파멸을 맞이하는 반면, 조상을 숭배하는 나라는 몇 세대에 걸쳐 번영을 누린다고. 나는 특히 루마니아의 경우 노인들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들려줄 진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알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로 과거를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러듯 과거를 향한 거짓 향수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다.
p.258~259
“공산주의자들은 풍경이란 풍경은 보조리 파괴했지만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했답니다. 이건 그저 전통을 얼마나 잘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요. 전통과 근대화는 하나가 존재해야만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과거가 있어야만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도 세울 수 있는 겁니다.”
p.285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수도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뿐 아니라 모든 영적 범주에 대해 명상함으로써 과거의 굴레로부터 세상을 해방시키고 이제 출발선에 서 있는 세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던 사람은 루소가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였어요.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고 무결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선한 면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들여 키워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선과 악이 각기 다른 가닥의 실오라기처럼 공존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앙과 희생은 그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라고 봐야겠죠. 고통과 희생이 오로지 증오로만 이어진다면, 그 고통과 희생은 모든 의미를 잃고 맙니다. 고통은 반드시 용서로 이어져야 해요. 그것이 그리스도의 분명한 논리잖아요.”
p.286~287
과거 ‘대 루마니아’는 1711년 이래로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한테 점령당하는 일을 열 번이나 겪었다. 무엇보다도, 루마니아가 폴란드와 함께 러시아의 서쪽 국경선, 그러니까 러시아가 아시아와 맞대고 있는 동쪽 국경지대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던 서쪽 국경지대 경계선의 대부분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란드가 역사시대 내내 러시아의 북유럽 평원 진출 경로로 여겨져서 엄청난 시달림과 압제를 당했던 것과 달리, 1900년경 루마니아는 그냥 러시아 제국의 농업 중심지인 우크라이나와 길게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루마니아는 다뉴브 강과 하류와 흑해를 거쳐 지중해와 콘스탄티노플로 나아갈 수 있는 남쪽 지름길 안에 놓여 있었다. 동시에 크렘린궁의 눈에 루마니아는 오스만튀르크를 막아주는 일종의 버팀목이었다.
p.293
1453년 비잔티움이 오스만튀르크에게 합락되자, 러시아는 그것을 비잔티움 제국의 배교 행위에 대한 신의 처벌로 여겼다. 따라서 “이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러시아가 진짜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대장이었다. 그것은 러시아가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정교 국가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러시아 정교가 그리스 정교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오류를 범하는 비율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제 정교를 신봉하는 유일한 전제군주 국가요, 차르는 정교를 믿는 유일한 전제군주였다.” 러시아가 원래 로마와 비잔티움의 뒤를 이어 이제 진짜로 ‘세 번째 로마’가 된 것이다.
p.294~295
제국의 상속자들은 운 좋은 나라였고, 그런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나라들은 운이 별로 없는 나라들로 여겨졌다. 루마니아라는 국가는 애초에 그 땅을 호시탐탐 넘보는 제국주의를 막으려는 목적에서 탄생한 나라였다. 19세기 발칸반도의 지도를 보면, 마구잡이로 세력을 확장한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오스만 제국이라는 거대하고 시커먼 그늘 사이에 왈라키아와 몰다비아라는 눈에 띄게 훨씬 밝은 그늘이 끼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는 같은 정교 동료인 루마니아 땅을 오스만 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야영지이자 자기네 병사들을 위한 군량미 생산지쯤으로 여겼다.
p.297
공산주의는 세계의 복잡성을 유달리 단순한 방식으로 천하의 바보한테도 설명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공산주의 안에서는 단 몇 가지 공식만 알면 플라톤, 하이데거, 데카르트보다도 더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세계를 성명하는 그 단순한 방식도 함께 몰락해버렸어요. 그러니 진공상태가 될 수밖에요. 지금 미개하고 투박한 민족주의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 갭을 달리 표현할 말이 있습니까? 공산주의의 범주를 사용해 스스로에게 세계를 설명하던 사람들이 이제 민족주의의 범주를 사용하는 이 현상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p.340
그런 대중들을 보면 나는, 역사 속에서 국가나 민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그 안에 속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 때 진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하나의 장엄한 대서사시는 그 구성원의 수만큼 수백만 갈래의 완전한 이야기로 갈라지게 된다. 공산주의가 정치적 압제와 경제적 압제 두 가지 수단을 다 동원해 개인의 삶을 억압해왔기 때문에, 그 수백만 갈래의 이야기는 지금껏 정의된 적이 별로 없다. 군중 한 사람의 표정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p.378~379
푸틴이 바라는 것은 우크라이나 본토를 관습적인 방식으로 침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동부에 작은 트란스드니에스트리아를 마련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약화시킬 수 있는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푸틴이 크림 공화국을 합병한 이유는 그저, 친모스크바 키예프 정부를 잃고 난 뒤 악화된 본국 러시아의 여론을 만족시키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크림 공화국 합병은 깔끔했다. 러시아 제국이 놀라울 만큼 비선형 내란을 닮은 사회 전복을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 말고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p.389
수십 년, 아니 거의 한 세기 동안 오스트리아의 방대한 영토는 유럽의 지정학으로 정의되었다. 오스트리아는 16세기에 중유럽으로 전진해오던 튀르크족 군대와 끝없이 범슬라브주의 책동을 조장하는 러시아를 막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해결책이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는 그런 세력들이 날리는 주먹질을 온몸으로 밀어내는 한편, 반종교개혁을 통해 독실한 가톨릭 국가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를 하나로 규합했다. 오스트리아의 역할은, 한편으로는 경찰국가 러시아와 방대한 범슬라브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의 자유, 민주, 혁명적 전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더욱 강화해, 지정학적으로 그 두 세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p.416~417
역풍까지도 내다볼 만큼 선견지명이 있었던 메테르니히는, 고정적으로 전진에 집착하던 호전주의자 나폴레옹에 대한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메테르니히가 믿었던 것은 인종국가가 아니라 법치국가였다. 그에게 법치국가는 법의 통제로 운영되는 관료주의체제 안에서 굴러가는 나라인 반면, 인종국가는 ‘피와 흙’이란 열정의 지배를 받는 나라요, 근대화와 분석의 적이었다. 그는 훨씬 더 평범하면서도 당시로서는 훨씬 더 필요한 인물이었고, 현재 유럽연합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관료들이 닮아야 할 고위직 관료요, 절충적이고 범대륙적인 기성 질서의 지칠 줄 모르는 수호자였다. 극우 민족주의 정당들이 유럽연합의 허술한 문짝을 꽝꽝 두들겨대는 유럽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당시 정세를 보호하고자 했던 메테르니히의 노고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p.419
피우수트스키의 비전은 가족사의 산물이었던 것은 물론, 그가 직접 피를 흘리며 얻어낸 경험의 산물이기도 했다. 1920년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국경 분쟁의 와중에, 소련 군대의 침공으로부터 폴란드를 구해낸 것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이어서 1926년 그는 폴란드 제2공화국 초대 수석의 자리에 올랐다. 리투아니아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그의 배경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폴란드의 다문화적 성향에 대한 피우수트스키의 믿음은 반러시아 국가 벨트를 형성해야겠다는 원대한 비전으로 발전했다. ‘인터마리엄’이라는 그 개념은 결국,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영토로 여겨졌던 땅, 그러니까 전성기게 발트 해 연안의 쌀쌀한 유럽 북동부의 평원으로부터, 오스만 제국과의 국경선에 이르렀던 광대한 지역을 정신적으로, 그리고 실제 영토상으로 계승하려는 개념이었다.
p.424
“사람들은 더 세계화된 세상과 마주보고 있을수록 자신의 인종적 뿌리를 알아내야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래서 역사가 계속 굴러가는 거지요. 하지만 거기서 비롯된 기장이 앞으로는 계속 민주주의를 통해 해결될 겁니다. 러시아는 앞으로도 계속 유럽 이 지역에서 공동체들을 분열시키고 약하시킬 기회를 찾아내려고 할 테고요.”
p.440
외교정책이 부족한 유럽연합과 달리, 푸틴은 신 차르제국풍의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가 비밀경찰을 이용했던 식으로 푸틴도 자신의 첩보기관을 공격의 주요수단으로 써먹고 있거든요. 그 덕분에 푸틴은 발트 해 연안의 북쪽 북대서양조약기구 군이 흑해 연안의 남쪽 북대서양조약구구 군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몰도바나 우크라이나 안에서 러시아가 움직일 경우보다 발트 해 삼국이나 폴란드 안에서 러시아가 움직일 경웨 북대서양조약기구가 훨씬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리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죠.
449
“루마니아는 러시아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러시아에 원하는 것은 더 싼 가격에 가스를 공급받는 것이지만, 그들은 그럴 생각이 없거든요. 그들이 우리한테 원하는 것은 더 밀접한 정치적, 군사적 유대지만, 우리는 또 그 문제에 관심이 없고요. 중유럽과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루마니아에는 러시아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안달 난 정당이나 당파가 없답니다.”
p.450~451
그곳은 더 이상 국경선이 느슨하던 제국의 세계가 아니었다. 여러 제국은 어떤 면에서는 몹시 잔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공동체의 공존을 위해서 인종, 언어, 종교 위에 세워진 주민의 정체성과 국경선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 매커니즘을 허용한 나라들이기도 했다. 그래야 모두가 한 군주를 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유럽을 휩쓴 공포의 저변에는, 전통적인 군주의 권력을 대신 차지한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 말고도, 여러 제국의 몰락과 근대적 인종국가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악몽의 후유증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중동은 지금까지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몰락이라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과연 유럽연합은 중유럽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몰락이라는 난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때까지 현재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p.468~469
시간은 움직이는 안개의 바다이다. 그 안개는, 기억이라는 강렬하고 성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는 구멍 몇 개가 군데군데 뚫려 있을 뿐, 그 나머지 부분은 전체가 뿌옇다. ···”낡은 것에 대해 기록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서술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서술하려면 그 과거와 자기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안개에 대해 기록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p.476~477
역사는 사람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의 미세한 움직임과 그 미묘한 차이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그 이전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방식을 한꺼번에 싹 지워버리는 격변 역시 다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순식간에 동유럽 전체를 휩쓴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이 모두 그런 사건이었다. 그동안 다양한 민주주의적 실험과 자유 시장경제가 루마니아와 헝가리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화시켰다. 선거를 통해 정권이 수립되었고 그 정권은 성공하거나 실패했으며 이어서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섰다. 공산주의 시대 강요된 침묵은 무자비한 자본주의에 적응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대체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적 차원에서 영웅들이나 하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제 가족은 스스로 부양해야 하는 사회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국가 국민들은 언제나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정치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다만 이 고민을 저 고민으로 바꾸어놓을 뿐.
p.479
민족주의는 뚜렷한 근대주의의 한 형태였다. 인간이 경전에 쓰인 글자 그대로 신을 믿지 않게 되면서 개인적 불멸성에 대한 믿음 역시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집단적 불멸성’ 속에서 피난처를 구하게 된 것이다. ···민족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른 이념의 파괴적인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덮어버릴 수 있는 이념은 오직 민족주의뿐이다. 그리고 사실 중동의 망명자들이 계속 동유럽으로 흘러드는 상황인 만큼 민족주의는 유럽의 인구통계학에 복잡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당분간 더 발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역사시대 내내, 다양한 고트 종족, 슬라브족, 마자르족 등 동쪽에서 이주해오는 사람들의 영향으로 운명이 결정된 유럽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그 마지막 파도를 미디어가 떠들어대듯 전례 없는 현상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유럽의 진짜 남방한계선은 지중해가 아니라 사하라 사막이었다는 사실을, 발칸반도는 종종 인간의 통과지대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하나로 묶는 고전 지리학이 다시 유럽 내에서 스스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p.487
근래 기억에 남는 문구를 발췌하는 것으로 북리뷰를 대신해 왔었는데, 오랜만에 감상평을 남긴다.
이 책은 인문서적 코너에서 서성이던 중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우리가 말하는 세계사라는 것이 대체로 20세기까지 식민지를 거느린 경험이 있는 일부 강대국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세계사의 주변부에 있는 국가들의 옛이야기에 귀기울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읽었던 인도사도 그런 맥락에서 읽었고, 이번 루마니아 역사 또한 그러한 케이스에 속한다.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와 달리 특파원 보도처럼 인터뷰한 내용을 문장으로 옮겨놓은 듯한 생생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또한 일반적인 역사서에서는 금기시되는 문학적 표현이나 주관적 판단이 드러나기도 한다. 서술방식이 유려하고 섬세해서 처음에는 여성 역사가가 쓴 글인 줄 알았다. 여하간 루마니아라는 역사의 그늘을 들춰본다는 것 자체가 참 용기 있는 행동이고 또한 그만큼 방대한 지식을 요하는 작업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칸반도에 자리잡은 루마니아는 종교적인 균열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나라이다. 최근 북한이 경제를 개방하려는 노력도 미국과 중국의 협조없이 진척시키기 어렵다보니 대두한 것이 우리나라의 중재자론이다. 마찬가지로 루마니아 역시 신냉전을 부채질하고 있는 푸틴 치하의 러시아와 균열의 잡음이 점증하는 유럽연합 사이에 끼어 확실하게 자신들의 국익을 챙기기 힘든 여건에 있다.
저자 캐플런의 말대로 이처럼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자리잡은 나라는 강대국들의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해내야 국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쉽더냐. 다행히 루마니아의 경우 헝가리로부터 할양받은 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헝가리인을 제외한다면 민족국가의 정체성이 뚜렷한 편이다. 또한 로마인의 후예라는 자긍심과 정교회를 믿는다는 공통분모는 루마니아인을 서방세계, 그러니까 러시아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로 향하게끔 이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영토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와 경제노선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루마니아와 같이 일원화된 외교 채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남과 북의 대화에는 항상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따라붙게 마련이니 우리의 지정학적 불리함도 루마니아 못지 않은 것 같다. 루마니아는 비록 공산주의에서 탈피하여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였지만, EU존의 주축인 독일과 프랑스만큼 선진화된 사회문화를 이루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과연 우리나라가 루마니아를 거울삼아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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