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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게르망트쪽 II일상/book 2018. 9. 22. 21:1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게르망트쪽 II/민음사/마르셀 프루스트>
병과 죽음의 심연이 우리 몸속에 열릴 때면, 또 세상과 우리 자신의 육체가 우리에게 덮치는 혼란스러운 동요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면, 그때 근육의 무게를 유지하고 골수까지 파고드는 전율을 견디면서 평소에는 그저 사물의 소극적인 자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그런 부동 자세를 취하는 일이나,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안정된 눈길을 유지하는 일조차도 모두 생명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극심한 투쟁이 된다.
p.13
깨어남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큰 변화는 우리를 명료한 의식의 삶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지성이 쉬던 곳, 마치 유백색 바다 밑과도 같은 곳에 새어든 빛에 대한 온갖 기억을 잊게 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표류하던 곳에서 반쯤 가려진 상념은 깨어 있음이라는 이름으로 칭하기에 완벽할 만큼 충분한 움직임을 우리 몸 안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면서 우리는 기억의 간섭이란 것에 부딪친다. 조금 후에는 이런 깨어남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래서 우리는 이 깨어남을 잠이라고 부른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잠든 사람 뒤에서 그의 모든 잠을 비추는 찬란한 별이 반짝일 때면, 이 별은 몇 초 동안 우리가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유성 같은 존재가 우리의 거짓 삶을, 하지만 꿈과도 흡사한 삶을 그 빛과 더불어 가져가면서, 다만 깨어난 자로 하여금 "잠이 들었었군."이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p.44~45
우리의 사회생활이란 것이 예술가의 아틀리에마냥 여기저기 버린 스케치로, 어느 순간 우리의 커다란 사랑에 대한 욕망을 고정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리지만 결국은 내팽개친 스케치로 가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스케치들이 너무 오래되지 않았다면 다시 그것으로 돌아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어쩌면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p.132
우리가 나날의 세월을 연속적인 순서대로 다시 체험하지 않고, 어느 아침이나 어느 저녁의 상쾌함과 햇빛으로 응결된 추억 속에서, 나머지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로 여기저기 고립되고 가두어지고 움직이지 않고 멈추고 상실된 풍경의 그림자가 어려 있는 추억 속에서 살기 때문일까? 그리하여 우리 밖에서뿐 아니라 우리 꿈과 성격의 발전 과정에서도, 만일 우리가 다른 해에서 뽑아 올린 다른 추억을 떠올리려고 한다면, 우리도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 시기에서 아주 다른 시기의 삶으로 넘어간는 점진적인 변화가 삭제되어, 이 두 개의 추억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과 망각의 거대한 벽 덕분에 마치 해발이 다른 심연과도 같은, 호흡하는 대기와 주위의 빛깔마냥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두 성질의 불일치 같은 것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콩브레와 동시에르와 리브벨이 연이어 내게 떠올린 추억들 사이에서 나는 시간 이상의 거리감을, 동일한 질료가 아닌 다른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 같은 걸 느꼈다.
p.145
우리는 이따금 예절의 현 상태가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라고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지극히 훌륭한 지성인들은 공화국에서 외교와 동맹이 존재할 수 없으며, 또 농민 계급은 정교 분리를 참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 요컨대 평등 사회에서의 예절은 철도의 발달과 비행기의 군사적 이용보다 더 큰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예절이 사라진다 해도 그것이 불행이라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끝으로 사회란 사실상 민주화되어 감에 따라 점점 더 은밀한 방식으로 서열화되어 가는 게 아닐까? 가능한 일이다. 교황의 정치적 권력은 교황이 국가도 군대도 가지지 않게 되면서 더 확대되었고, 대성당은 17세기 맹신도보다는 20세기 무신론자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p.239
고통은 열매로다. 신은 열매를 자라게 하지 않는다. 열매를 지탱하기에 너무도 연약한 가지에는.
p.305
게르망트라는 이름의 다가갈 수 없는 언덕을 올라갔다가 공작 부인의 삶이라는 내적인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거기서 내게 친숙한 빅토르 위고나 프란스 할스의 이름을, 그리고 슬프게도 비베르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나는 마치 중앙 아메리카나 북부 아프리카의 작은 야생 골짜기를 여행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같은 놀라움을 느꼈다. 여행자가 그곳의 기이한 풍속을 상상하기 위해 지리적 거리감과 낯선 식물 명칭들을 참조한 후 거대한 알로에나 만치닐 나무 숲의 장막을 통과했을 때, 원주민들이 볼테르의 「메로포」나 「알지르」를 읽는 모습을 발견하고 느낄 법한 그런 놀라움이었다. 내가 알던 교양 있는 부르주아 여인들과 그토록 멀리 있고 그토록 뛰어난 게르망트 부인이 그녀가 평생 알지 못할 부르주아 여인들 수준으로 차후의 목적이나 야심도 없이 낮추려고 애쓰는 그 교양은, 뭔가 페니키아 고대 문명에 대한 학식이 정치가나 의사에게서 그러하듯, 쓸모가 없기에 더 가치 있는 그래서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였다.
p.361~362
우리는 두 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몰두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우리가 받은 심오한 인상으로부터 오는 힘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다. 첫 번째 힘을 동반하는 것은 기쁨으로, 창조자의 삶에서 발산된다. 또 다른 힘은 외부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우리 안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즐거움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위적인 도취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덧붙이지만, 이런 도취감은 금방 권태나 서글픔으로 바뀌곤 해서···
p.402~403
교양을 쌓아라(nunc erudimini)
p.480
바르트의 말처럼 리얼리즘에서 중요한 것이 세계의 모방이나 재현이 아닌 백과사전적인 지식의 무대화에 있으며, 그리하여 모든 종류의 지식을 담당하는 문학은 그 지식들을 혼함하고 극화하여 지식은 글쓰기를 통해 더 이상 인식론적 담론이 아닌 극적 담론에 의해 끊임없이 지식에서 반사한다고 설명된다면, 「게르망트」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그 현란한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구현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p.491
고전이 '자품의 초시간성'이 아닌, 자신의 시대와는 일치되지 않는, 그 불협화음이 후세에 가서야 인정되는 그런 작품을 가리킨다면, 과연 어떤 새로움이 프루스트로 하여금 고전 인용이나 은유적인 글쓰기 같은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길을 택할 수밖에 없게 한 것일까? 마치 베르고트가 라신의 장세니스트적인 기독교의 얼굴 아래 변태적이고 히스테릭한 이교도적인 또 다른 얼굴을 간파하고, 이런 라신의 혼미를 '장세니스트적인 창백함'이라고 표현했듯이 「게르망트」는 한나 아렌트의 지적처럼 그동안 억압되고 배제되어온 세기말의 가장 어두운 부분인 유대인과 동성애라는 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또 바르트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 절대적인 고통의 순수성을 극화한 '할머니의 죽음'이야말로 문학이란 바로 이런 감동적인 외침인 파토스의 공간이며, 작가의 개별적인 몸에서 우러난 감동만이 진실의 순간을, 작품의 생명력을 담보해 준다는 점에서 「게르망트」는 문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p.495
「스완네 집쪽으로」나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보다는 좀 지루한 감이 있었던 「게르망트쪽」. 그럼에도 다른 스토리에 비해 비장미가 드러나는 특색이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애초게 기획했던 것이 「게르망트쪽」까지였다고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 「갇힌 여인」, 「사라진 알베르틴」, 「되찾은 시간」도 어서 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