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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게르망트 쪽 I일상/book 2018. 8. 23. 00:0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게르망트 쪽 I / 마르셀 프루스트 / 민음사>
그때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산소나 다른 기체를 담은 작은 풍선과도 같아, 내가 만약 그 풍선을 터트려 안에 담겨 있는 걸 나오게만 한다면, 나는 그해의 콩브레 향기를, 바람에 살랑거리는 산사나무 꽃향기가 섞인 그날의 콩브레 향기를, 광장 한 모퉁이에서 비를 알리는 전조인 바람이 차례로 햇살을 날아가게 하고 성당 제의실 붉은 모직 양탄자를 펼쳐 놓고 거의 제라늄 분홍빛에 가까운 반짝이는 살색으로, 말하자면 환희 속에 그토록 축제에 고귀한 빛을 띠게 하는 바그너풍 부드러움으로 덧칠하던 향기를 호흡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오늘날에는 죽은 철자 가운데서 갑자기 실체가 꿈틀거리며 그 형태와 새겨진 모양이 느껴지는 아주 드문 순간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의 현기증 나는 소용돌이 속에서 실질적인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는 이름은, 너무 빨리 돌아가는 각기둥 모양 팽이마냥 모든 빛깔을 잃고 잿빛으로 보이지만, 대신 우리가 몽상 도중 과거로 되돌아가는 그 연속적인 움직임을 늦추거나 혹은 멈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명상한다면, 우리 삶의 여정 동안 동일한 이름이 연이어 보여 주던 여러 빛깔들이 조금씩 나란히 겹쳐지면서, 하지만 완연히 구별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p.20
지금은 멀리서 보면 창공의 푸른빛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평범한 사물의 시계 안으로 들어오는 언덕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들이 절대의 세계를 떠나 그저 내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인식하는, 다른 것들과 비슷한 그런 것에 지나지 않았고, 배우들도 내가 아는 이들과 똑같은 본질로 만들어져 그저 「페드르」의 시구를 더 잘 낭송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 시구 역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숭고하고도 개별적인 본질을 이루지 못한 채 다소간에 성공적인, 그것이 끼어 있는 방대한 프랑스 시 목록 안에 다시 들어가려고 준비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내게 영향을 미치는 그 집요한 욕망의 대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해마다 모습을 바꾸면서 어떤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갑작스러운 충동적 행동으로 몰고 가는 그 변하지 않는 몽상, 이런 몽상에 쓸리기 쉬운 성향은 여전히 존재했으므로, 나는 그만큼 더 깊은 절망감을 맛보았다.
―p.75
내가 처음 라 베르마를 들었을 때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면, 예전에 질베르트를 샹젤리제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가 지나치게 큰 욕망을 품고 다가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환멸 사이에는 이런 유사성뿐 아니라 어쩌면 보다 심오한 유사성이 있었을지 모른다. 한 인간이나 작품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인상은 아주 특징적이며 특별하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이나 '스타일의 폭', '비장미'라는 관념이 있어, 부득이한 경우 어떤 평범한 재능이나 단정한 얼굴에서도 이를 알아보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지만, 이내 우리의 주의 깊은 정신은 그 앞에서 어떤 지적인 등가물도 가지지 못한 형태가 집요하게 나타나는 걸 보면, 거기서 미지의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신은 날카로운 소리나 기이하게 묻는 듯한 억양을 들으면서 이렇게 질문한다. "이게 아름다움일까? 내가 느끼는 것이 찬미일까? 바로 이것이 색채의 풍요로움이며 고귀함이며 힘이란 걸까?" 그러면 다시 정신에 응답하는 것은 날카로운 목소리이자 기이하게 묻는 듯한 어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존재로 인해 야기된 횡포한 인상, 순전히 물질적인 인상으로, 그 안에는 '연기의 폭'을 위해 어떤 빈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로 이런 사실로 우리가 귀 기울여 진지하게 듣는 경우, 우리를 가장 많이 실망시키는 작품이 실제로는 가장 훌륭한 작품들로, 거기에는 바로 우리 관념의 목록 중 이런 개별적인 인상에 일치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p.81~82
이렇게 해서 프랑수아즈는, 인간이란 내가 생각했듯이 장점이나 결점과 계획, 우리에 대한 견해를 가진 명료한 부동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결코 꿰뚫고 들어갈 수 없고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도 없는 그림자이며, 이런 주제에 대해 말과 행위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내는 믿음은 각각 서로에게 불충분한 데다가 모순투성이 지식만을 제공할 뿐이며, 우리는 이런 증오와 사랑이 번득이는 그림자를 마치 진실인 양 번갈아 상상한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준 최초의 인간이었다.
―p.108~109
어제만 해도 그칠 줄 모르는 소음이 지속적으로 거리나 집 안 움직임을 그려 보이면서 마치 지루한 책처럼 우리를 잠들게 했는데, 오늘은 이런 수면 위에 펼쳐진 정적의 표면에 다른 것보다 더 세게 뭔가가 부딪치면서 자신의 소리를, 숨결처럼 가볍고 다른 어떤 음향과도 관계없는 신비스러운 소리를 들리게 한다. 그러면 그 소리가 내뿜는 설명에 대한 요구가 우리 잠을 깨우고 만다. 이와 반대로 병자의 고막을 틀어막는 솜 마개를 잠시 떼어내면, 갑자기 빛이, 소리의 찬란한 태양이 다시 눈부시게 나타나 우주 안에 되살아난다. 유배를 갔던 수많은 소음들이 서둘러 전속력으로 돌아온다. 마치 음악가 천사들이 노래하는 목소리인듯, 우리는 목소리의 부활에 참여한다.
―p.121
우리가 낮에 하려고 했던 것이 실은 잠이 들면서 꿈에서만, 다시 말해 잠으로 굴절되면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길을 따를 때라야만 성취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이야기도 시간이 흐르면 다르게 끝난다. 어쨌든 우리가 잠자는 동안 체험하는 세계는 너무도 달라, 잠들기 힘든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 세계로부터 빠져나가려고 애쓴다. 여러 시간 동안 두 눈을 감고, 눈 뜨고 있을 때와 비슷한 상념을 절망적으로 반복한 후에, 그들은 이전 순간이 논리적 법칙과 현재의 자명성과는 정확히 모순되는 추론의 무게 때문에 무거워졌으며, 이런 기억의 짧은 '부재'가 그들에게 이제 문을 열어, 어쩌면 그들이 그 문을 통해 조금 후면 현실의 지각에서 빠져나갈 수 있고, 현실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잠시 머무를 수 있으며, 또 이것이 얼마 동안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게 해 주리라는 의미임을 깨닫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용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 등을 돌리고, '자기 암시'가 마녀처럼 상상의 병 혹은 신경증 재발 같은 유해한 음식을 준비하여, 무의식적인 수면 동안 점차로 올라오는 발작이 잠을 중단할 정도로 심해져서는 그 발작이 시작될 시간만을 엿보는 동굴의 입구에 이르기만 해도, 우리는 이미 큰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p.136~137
때로 나는 눈을 들고 덧문이 닫히지 않은 어느 거대한 오래된 집을 바라보았는데, 그 안에서는 수륙 양서의 남녀가 매일 저녁 낮과 다른 원소 속에 사는 데 적응하여, 어둠이 떨어지자마자 램프 불이라는 보고에서 끊임없이 솟아올라 돌과 유리 내벽의 가장자리까지 철철 넘쳐흐를 정도로 방을 가득 채우는 기름진 액체 속을 천천히 헤엄쳐 가면서 그들 몸의 움직임으로 끈적거리는 금빛 소용돌이를 번지게 했다.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갔고 대성당 앞을 지나가는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설 때면, 예전에 메제글리즈의 오솔길에서처럼 내 욕망의 힘 때문에 자주 걸음을 멈추곤 했다. 한 여인이 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옷자락이 스쳐가는 것만 느껴져도 어떤 강렬한 기쁨이 이 접촉을 우연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나는 그 놀란 행인을 내 품에 안으려 했다.
―p.153~154
"우리가 환경 탓으로 돌리는 영향력은 특히 지적 환경에 대해서는 사실이죠. 인간은 자기가 가진 사상에 의해 규정되니까요. 그런데 사상은 인간 수보다 적어요. 따라서 동일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은 모두가 비슷할 수밖에 없죠. 사상에는 물질적인 면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의 사상을 가진 인간을 단지 물질적으로만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법이죠."
―p.168
우리는 한 존재에 대한 감정에, 그 존재가 일깨우지만 그 존재와는 무관한, 이미 예전에 다른 여인에 대해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집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 특별한 감정을 뭔가 우리 마음속에서 보다 일반적인 진리에 이르게 하려고 애쓰며, 다시 말해 인류 전체에 공통된 보편적 감정에 포함시키려 한다. 이 보편적 감정과 더불어 개인과 개인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아픔은 과거의 우리와 소통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내 아픔에 기쁨이 섞인 것도, 그 아픔이 이런 보편적 사랑의 아주 작은 부분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내게는 별과 산들바람뿐 아니라 시간의 수학적인 분할까지 어딘가 고통스럽고 시적인 모습을 띠었다. 이제는 매일매일이 흐릿한 언덕의 움직이는 산마루처럼 보였다. 한편으론 내가 망각을 향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다른 한편으론 공작 부인을 다시 보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 것 같았다. 이처럼 나는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했다.
―p.192~193
침묵은 힘이라고들 한다. 침묵은 다른 의미에서는 사랑받는 이들이 가진 무서운 힘을 뜻하기도 한다. 이 힘은 기다리는 이의 불안을 가중한다. 우리와 떨어져 있는 인간보다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침묵보다 더 극복하기 힘든 장벽이 또 어디 있으랴? 누군가는 또한 침묵은 형벌이며, 감옥에서 침묵을 강요받은 자는 거의 미칠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침묵을 감수하는 일은 침묵을 지키는 일보다 훨씬 큰 형벌이다!
―p.195
그날 저녁 중대장의 식탁에 앉은 생루를 보면서, 나는 옛 귀족과 제정 시대 귀족이라는 두 귀족 계급 사이의 차이를 그들 각자의 태도와 우아함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온갖 지성으로 거부해도 이미 핏속에 그 결함이 전해진 계급, 적어도 한 세기 전부터 실질적인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이 맡은 교육의 일부를 이루는, 보호자인 체하는 상냥함을 승마나 검술 같은 어떤 진지한 목적 없이 그저 심심풀이 훈련으로밖에 보지 않는 계급, 이런 계급 출신인 생루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친숙한 태도가 부르주아들을 기쁘게 하고, 무례한 태도가 오히려 그들의 자존심을 충족시킨다고 믿을 만큼 그렇게 경멸하는 부르주아들을 만날 때도, 소개받는 부르주아가 누구이든 간에 어쩌면 한 번도 이름을 들은 적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정담게 그 인간의 손을 잡고 담소를 나누면서 그를 '나의 존경하는 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반대로 영광스러운 군 복무의 대가로 받은 막대한 세습재산이 있는 한 작위는 여전히 의미 있는 귀족에 속하며, 또 수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아는 그런 고위직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는 보르디노 대공은 아직도 그의 신분을 실질적인 특권으로 간주했다.
―p.209~210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틀 안에서만, 끝없는 우리 애정의 지속적인 움직임 안에서만 본다. 그들의 얼굴이 보여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도달하기에 앞서 애정은 자신의 소용돌이에서 이미지들을 꺼내어 우리가 그들에 대해 늘 가지고 있는 관념 위에 다시 던지면서 그 관념에 부착하거나 일치시키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마와 뺨에서 할머니 정신의 가장 섬세하고 가장 영속적인 표현을 해석할 줄 알았던 내가, 또 모든 습관적 시선이 일종의 주술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 각각이 우리 과거를 반사하는 거울인데도, 어떻게 내가 할머니에게서 그 무거워져 가는, 변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할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떤 끔찍한 우연의 장난이 우리가 결코 보아서는 안 될 장면을 숨기려고 우리의 지적이고도 신앙심 깊은 애정이 때맞춰 달려오는 것을 방해할 때면, 우리 시선이 애정을 앞질러 먼저 그곳에 도착하여 영화 필름마냥 기계적으로 작동하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는, 우리 애정이 결코 그 죽음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하는 이 대신, 우리 애정이 하루에도 수백 번 사랑한다는 거짓된 유사성으로 포장하는 새로운 존재를 보여줄 때도 이와 마찬가지다. ···할머니가 여전히 나 자신이며 언제나 내 영혼 속, 늘 과거 같은 지점에서 겹쳐지는 인접한 추억의 투명함을 통해서만 할머니를 보아 왔던 나는, 이제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서 새로운 세계, '시간'의 세계, "그 사람 잘 늙었네"라고 말하는 낯선 이들이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난생처음으로,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에 거기 등잔불 아래 긴 의자에 앉은 붉고 무겁고 천박하고 병든 여자가, 내가 모르는 쪼그라든 늙은 여자가 꿈꾸듯 멍한 시선을 책 위로 이리저리 던지는 모습을 보았다.
―p.226~227
내가 적어도 글을 다시 쓸 수만 있다면! 그러나 이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이 어떠하든 간에 열정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규칙적으로 산책을 절제하거나 연기하면서, 또 그 산책을 열심히 글을 쓴 후의 보상으로만 남겨두면서, 건강한 날에는 한 시간을 할애하고, 아픈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노력해 보았지만, 거기서 나온 결과는 언제나 하얀 종이, 마치 어느 마술에서 미리 카드를 뒤섞어 놓아도 반드시 꺼내기 마련인 그런 선택의 여지없는 카드마냥 피할 수 없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였다.
―p.240
내가 자신을 시시한 여배우로 여기며, 반대로 자신이 경멸하는 배우들에 대해서는 많은 존경심을 품고 있다는 걸 그녀는 분명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인정받지 못한 위대한 재능에는, 그녀의 재능이 그렇듯, 비록 그 자체로서는 확실하다 할지라도 어떤 수치심이 들어 있는 법이며, 또 우리가 타인에게 요구하는 존경심은 우리의 숨겨진 재능에 비례하지 않고 우리가 현재 취득한 자리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p.270
햇빛이나 여행이 주는 취기에서 시작하여 피로나 술이 주는 취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취기가, 바다의 심연마냥 '수위'가 다른 갖가지 다른 도수의 취기들이, 바로 그것이 다다른 정확한 깊이에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인간을 드러나게 한다. ···도취의 기쁨은 혐오감보다 더 컸다. 쾌활함 때문인지 혹은 허세 때문인지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그자도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감각적인 것이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간의 그런 덧없는 강력한 세력 아래 있다고 느꼈으므로, 나의 유일한 슬픔 때문에 지금 막 거울에서 포착한 그 추악한 자아가 어쩌면 그의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으며, 그리하여 내 평생 이 낯선 자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잘 알지 못했다.
―p.275~276
나는 이 사건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사악함이라는 관념이 뭔가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행에 대한 동정심 역시, 우리 자신이 상상 속에서 고통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법이므로 불행한 사람에겐 그것과 맞서 싸우느라고 자신을 동정할 여유도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정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악함에도, 악인의 영혼 속에는 상상만 해도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런 순수하고도 관능적인 잔혹은 아마 없을 것이다. 증오가 악인을 자극하고 분노가 열정을 불어넣으면서, 악인은 스스로도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 그런 행동에서 기쁨을 느끼려면 사디즘이 필요하다. 악인은 자기가 괴롭히는 사람이 바로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p.279~280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인간이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 우리 모습을 그림처럼 복사하면서 그 형태를 부여한다.
―p.301
정치적 진실이 비록 어떤 문서로 기록되는 경우에도, 이 문서에 엑스레이 사진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사람은 환자의 병이 엑스레이 사진에 전부 나타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 사진은 단지 판독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만을 제공할 뿐 다른 많은 요소들이 더해져서 의사가 그 모든 걸 가지고 추론하며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진실이란, 진실을 아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진실을 포착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빠져나가는 법이다.
―p.405
"드레퓌스에게 판사를 임명해야 하오. 또 이것은 쉬운 일이오. 왜냐하면 스스로를 비난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온건한 프랑스에서는, 진실과 정의의 말을 들으려면 망슈 해협을 건너가야 한다고 믿거나 그렇게 믿도록 내버려 두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대체로 스프레강 쪽으로 가기 위한 우회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판사는 베를린에만 있는 게 아니라오. 하지만 정부가 일단 행동을 개시하면 그대는 정부가 하는 말을 듣겠소? 정부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대는 그 말을 듣고 정부 편에 서겠소? 정부가 애국심에 호소한다면 그대는 못 들은 척 하지 않고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겠소?"
―p.407
프랑스와 전쟁 직전 상태에 놓인 나라에서 대리 대사를 맡은 적 있는 노르푸아 씨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지 근심하면서도 그 사태가 '평화'나 '전쟁'이란 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공포나 축복을 의미하며, 외교관은 그의 전문적인 언어의 도움을 받아 그 말을 금방 해석할 줄 알고 프랑스의 존엄성을 보존하기 위해 똑같이 평범한 단어로 대답하지만, 상대 국가의 장관은 거기서 금방 '전쟁'을 간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p.432
민족이란 제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이기주의와 술책에 능한 존재로서 힘이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라야만 굴복하며, 이런 이해관계는 그들을 살인으로, 종종 상징적인 살인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데, 단순히 싸우는 것을 망설이거나 거부하는 행위 자체가 민족에게는 '멸망'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노란 문서'나 다른 책에는 쓰여 있지 않으므로 민족은 기꺼이 평화를 사랑한다.
―p.434
서로에 대한 우리 의견이나 우정 또는 가족 관계는 표면적으로만 고정되어 있을 뿐, 바다만큼이나 영원히 유동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거기서 그토록 완벽하게 결합된 것처럼 부부 사이에 이혼 소문이 돌다가도 오래지 않아 곧 서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절대 헤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친구가 우리에 대한 욕을 해 대어 놀라지만, 우리의 놀라움이 다 가시기도 전에 다시 화해를 하고, 민족 사이에도 아주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동맹관계가 뒤바뀌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p.448
우리의 행동 가운데 우리 자신이 기억하는 행동은 가장 가까운 이웃도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한 사실조차 잊어버린 말, 하물며 우리가 말한 적도 없는 말이 다른 별자리에서는 웃음을 야기하며, 또 우리 행동과 태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도 마치 그림에 먹지를 대고 복사하지만 실패하는, 검정 선 있는 곳에는 빈 공간이, 하얀 부분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윤곽이 나타나는 그림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우리 이미지와 닮지 않는다. 옮겨지지 않은 부분은 뭔가 존재하지 않는 모습으로 단지 우리가 자기만족으로 떠올린 것이며, 우리에게 추가된 듯 보이는 요소가 실은 우리의 일부이고, 하지만 그토록 우리 몸 깊숙이 그 본질이 배어들어 있어 우리로부터 빠져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와 그토록 닮지 않은 이 이상한 판본에도 엑스레이 사진처럼물론 유쾌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심오하고 유익한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p.452~453
우리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우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의 존재에 묶여 있으며, 어떤 심연이 우리를 그 존재로부터 갈라놓아 그 존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도 그 존재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 존재가 바로 우리 몸이다.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는 경우에는, 우리의 불행으로 강도를 설득할 수 없다면 적어도 강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강도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 동정을 구하는 일은, 우리가 하는 말이 물소리만큼이나 무의미한 낙지 앞에서 떠드는 격으로, 이런 존재와 살도록 선고받은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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