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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우 메도우 메도우(Meadow, Meadow, Meadow)주제 있는 글/Théâtre。 2018. 11. 1. 19:57
이렇게 되고 보니 연극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인상도 남지 않는다. 때로는 적나라하거나 무의미하고, 때로는 공격적이거나 익살스럽고, 동작은 연속되어 있으나 의미는 분절되어 있는 연극. 내가 유일하게 배우들의 표정을 읽을 여유를 가진 건 커튼콜 타임이 다 되어서였던 것 같다. 기획자로 보이는 사람―왜냐하면 무대에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으니까―은 독일인처럼 키가 크고 짧은 금발을 하고 있었는데, 배우들과 일렬 횡대로 서서 인사를 할 때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수행해야 했던 것을 완벽히 소화해냈다는 듯이. 도대체 왜? 왜냐하면 나는 연극을 보며 일종의 민망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단지 배우들이 반라―가끔은 전라―로 유인원 같은 연극을 펼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극단에 합류하기까지 여러 예술적 몸동작을 단련했을 저 배우들이 왜 저런 단순하고 유치해보이는 무언극을 펼치는 것인가 질문을 떠올리며 곤혹스러웠던 것 같다. 아주 잠깐 무언극을 깨는 단조로운 대사가 있었다. 루아이리 도노반―극중 가장 키가 크고 붉은 수염을 길렀던 인물―의 내레이션이 중간에 삽입된 것. 이 연극의 모티브가 된 오래된 전설을 소개하는데, 요지는 타인의 육체를 탐하는 것이 탐하는 이의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그 대상인 자의 존재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다. 실제 존재하는 전설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 연극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이 연극을 기획한 조디악 센터(Zodiak Center for New Theater)도 찾아보았지만, 새로운 단서랄 만한 건 연극의 제목이 <메도우 메도우 메도우>인 것이 3개의 잔디밭(Meadow) 컨셉이 상연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잡초와 사물이 뒤섞여 풀냄새가 풀풀 풍기는, 무질서하기는 해도 물리적으로는 단일한 공간이었는데, 내가 3개의 기획을 감상하고 있었다니 말 아연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8~9명 되는 배우들이―수시로 무대 안과 밖을 오가기 때문에 정해진 인원구성이 없다―대략 2~3명씩 콤비를 이뤄 '행위'들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각각의 행위가 단일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지는 않았었다.
현대연극의 새로운 모습인 것일까? 연극의 어느 부분이 의도된 것이 어느 부분이 의도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애당초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인지, 정형화되지 않은 연극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120분이라는 정해진 상연시간을 채울 수 있었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이렇게 연극을 하고 났을 때, 배우들은 무엇으로부터 성취감을 느낄 것이며, 어떤 대목에서 관객과 소통을 했다고 느낄 것인지 아주 미스테리한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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