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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호실(Ward No.6)주제 있는 글/Théâtre。 2018. 11. 20. 01:26
<제6호실/토니 불란드라 극단(루마니아)>
희곡으로 상연되는 작품 중에 러시아 원작이 심심찮게 보이곤 하는데, 내로라 하는 러시아 작가의 작품들을 몇 권―대체로 장편소설―을 찾아읽기는 했었어도 이 <제6호실>이라는 작품이 안톤 체호프의 단편이라는 사실은 연극이 끝난 뒤 배우들과의 대담이 시작되고서야 알았다. 개인적으로는 연극 자체보다도 극단이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연극을 고른 상태였다. 얼마전 읽은 로버트 카플란의 <유럽의 그림자>에 그려진 낯선 나라 루마니아는 서방국가도 아니고 동구권국가도 아닌 어정쩡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인 나라였기 때문에 어쩐지 우리와 공통분모를 공유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와 어감이 닮았던 루마니아어 발음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연극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 연극은 정신병동 6호실에 수감된 환자와 이들을 감호하는 안드레이 에미피치라는 의사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비범한 환자인 이반 드미트리치와 안드레이와의 대화 속에서 어디까지가 비이성이고 어디까지가 이성인가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광기를 재단하는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고발하는 미셸 푸코의 말처럼, 누가 미쳐 있는 것이고 누가 미쳐 있지 않은 것인지 알쏭달쏭하게 엮어놓은 연극 <제6호실>.
연극을 보고나서 당연히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찾아보니 <열린책들>에서 나온 단편선에 <제6호실>이 포함돼 있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연극을 보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의사인 안드레이 에미피치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사에서 읊듯 안드레이는 투쟁, 고통, 죽음만이 진보한다고 한다. 병적인 그의 움직임과 흐느낌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니콜라이 2세의 무능한 전제정하에 놓인 창작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안드레이에게 '삶의 고통'이라는 것은 그저 원인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이미 확정된 전제와 같다.
연극에서 감찰을 위해 병동을 방문한 호보토프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고, 간간이 순탄치 않게 흘러가는 남녀관계에 대한 묘사도 등장하는데 연극에는 충분히 묘사된 것 같지 않다. (또는 번역된 연극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결론적으로 안톤 체호프의 원작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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