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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꼭 한 번 출사(출사라고 하니 너무 거창하지만...)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서울의 여러 산을 다녀봤지만, 좀처럼 발길을 옮기기 어려운 곳이 있었으니 그 이름 안산(鞍山).
모처럼 사진 찍고 돌아다니겠다고 신촌까지 나갔으나...지하철역을 나오는 순간부터 턱하고 막히는 후끈한 열기;; 그래서 그런지 금요일인데도 신촌이 한산하구나.
요새 쾌청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사실 오늘은 가시거리가 멀지 않아 원하는 풍경을 찍기에 그리 좋은 날은 아니었다.
그래도 뭐 날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니...
아마 더운 날씨가 오래 이어진 탓에 도시 전체가 습기에 짓눌린 것 같았다.
요새 같아선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아쉬운 대로 발걸음을 했지만, 곧 해가 넘어가는 시간대임에도 삼각대조차 챙겨오지 않은 상황..뭐 이것도 어쩔 수 없지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보니 안산이 야트막한 산이라길래 나는 정말 무턱대고 아무 생각없이 산을 올랐다.
'야트막한 산'
'야트막한 산'......
산을 너무 오랜만에 오른 건지, 아니면 길을 잃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체력부족인 건지, 정말 등산이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산에 오르고 나니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이 두 명이 더 있었다.
슬슬 해도 저물어가고 다들 삼각대를 설치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혼자서 난간을 지지대 삼아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해가 저물고 나니 셔터스피드의 소리가 확연히 느려지는 게 느껴졌고, 그만큼 내 사진의 질도 현저히 떨어져갔다...ㅋㅋㅋ
그래도 스나이퍼에 빙의된 듯 꿋꿋이 촬영^^
이런 원경(遠景)을 찍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망원렌즈든 광각렌즈든 하나 장만하고 싶다.
아무리 최대로 줌인을 해도 나오는 게 이것밖에 안 된다니..ㅠ
그래도 이런 사진을 담는 것 자체가 소소한 재미라, 렌즈욕심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모셔놓고만 있다.
또 하나의 고역은 여름이라 벌레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해 저물녁에는 산모기가 극성이더니, 아예 해가 저물고 난 뒤에는 웬 자잘한 나방들이 달라붙어서 성가셨다.
무엇보다 해가 저물고 나서 산을 내려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대책 없이 마냥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저녁도 안 먹은 상태라 더 늦기 전에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변이 시커멓게 어두워진 시각.
시야는 확보되지도 않고,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앞을 살피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밟을 곳을 찾았다.
올라올 때는 밝을 때라 사람도 꽤 있었는데, 정상에 남아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귀가한 모양이었다;;
양옆에 나뭇잎이 괜히 부스럭대는 것 같고,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서울의 서쪽에서 서울의 풍경을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서울의 동쪽이라면 낙산공원이나 삼청동 근처 북악산 자락에서 광화문 일대를 눈 아래로 바라볼 수 있고 강남 일대까지도 시야에 들어오지만, 여의도 쪽은 아무래도 남산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다.
오늘 온 안산은 서울의 서쪽인지라 여의도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인다ㅎㅎ
대신 강남 일대가 살짝 가리긴 하는데, 그마저도 날씨가 맑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떠오른 거지만, 산에 올라서 본 경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관악산에 올랐을 때 저멀리 보였던 인천 앞바다였다.
그날은 가시거리가 너무 좋아서, 황금빛의 무언가가 저 멀리서 출렁이는데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인지..시간이 참 빠르다.
후..산 정상에 있던 사람 중 가장 바쁘게 셔터를 눌러댔지만, 집에 와서 사진함을 열어보니 과연 처참하다ㅋㅋㅋ
삼각대가 없는 이상 좋은 사진 건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괜히 초점 나간 사진 실험해보고...
망원렌즈가 있으면 좀 더 좋은 사진이 나오려나??
뭐...오랜만에 DSLR로 사진 찍고 다닌 것만으로 만족!이다.
요새 워낙 실내에만 틀어박혀 있는 중이다 보니 날씨야 어떻든 좀 바깥공기를 쐬고 싶던 참이었으니.
험난하게(?) 나들이 하고 오니 기분전환도 되고 좋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