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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버려진다는 것일상/film 2019. 10. 16. 23:42
영화 상영에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는 걸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는 2월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가을철에 구미를 당기는 영화가 유달리 많이 개봉한다. 이번 10월도 어김없이 좋은 영화가 스크린에 많이 걸렸는데, 공교롭게도 회사업무가 쏟아지는 달이었으니=_=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려다 휴일근무에 철도파업까지 겹쳐서 예매해뒀던 부산행 티켓을 취소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보고 싶었던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얼추 다 챙겨본 것으로 만족해야 하려나 보다. 이렇게 영화를 챙겨보는 게 내가 봐도 참 유별스럽지만, 요새 같아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모든 리듬이 내 바깥에 파묻혀버릴 것 같다. 여하간 서른 번째 가을은 유독 여유가 없다.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 요새 많이 회자되는 배우다. 이 배우가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까지 관심을 끌었었나 싶은데, 아무래도 '조커'라는 캐릭터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사람들도 좀 더 배우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조금 더 관심이 있던 사람 중에는 호아킨 피닉스를 <HER>에서 인상깊게 봤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물론 <글래디에이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호아킨 피닉스를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는 <이민자>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제목이 너무 평범해서 영화제목이 맞나 싶기까지 하지만, 제레미 레너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등장한 멋진 영화다. (제목 그대로 뉴욕에 정착한 한 여자와 그 여자를 둘러싼 치정을 다룬다) 뭐랄까 다른 한편으로는 호아킨 피닉스 같은 느낌의 배우로 마이클 패스벤더가 떠오른다. 형언하기 어려운 공허감, 고독감, 초연함이 담긴 눈동자(視線)를 보면 자연히 나의 시선도 고정된다.
가족들과 영화를 함께 봤는데, 동생은 굉장히 염세적이고 암울한 영화의 무드에 압도당한 것 같았다. 반면 나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메시지에 대단히 공감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에게 더욱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호의호식하며 레저를 즐기듯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들을 위해 시스템을 공고히 쌓아올리는 기득권. (공교롭게도 영화가 제작된 미국이 이러한 케이스의 가장 대표적인 국가다;;)
우리는 조커가 악역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어쨌든 타인의 목숨을 제물 삼아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해, 끝까지 철저히 악행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하얀 병동에 갇힌 '죄수' 조커를 보면서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기조차 아까운 저러한 광기(狂氣)가 있어야 비로소 사회라는 얼룩 낀 톱니바퀴가 삐걱삐걱 움직이고 한 톨이나마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동생의 의견대로 조커의 행위는 어떤 식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지만, 나는 때로 룰 자체를 깨는 행위도,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행위도 어느 정도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극에서처럼 인간의 생명이나 인권까지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프랑스 영화가 참 좋다. 영화관에서 프랑스 영화가 상영한다 싶으면 열에 열은 직접 영화관에서 본다. 이번 영화의 원제는 <Celle que vous croyez>. 우리말로 하면 '당신이 믿는 것' 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나라에서 <트루 시크릿>으로 번안이 된 건 영화의 본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영화 자체가 극도의 외로움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모순된 심리를 다루고 있는 것은 맞지만, 영문 제목이 <Who you think I am>이듯 '비밀'이라는 측면보다는 '객관적 또는 주관적인 자기 인식'이 좀 더 중점적으로 표현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뭐..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비영미권 영화일 수록 좀 핀트가 맞지 않게 소개가 돼서, 그렇지 않아도 영미권 영화 일색인 국내 외국영화시장에서 더욱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쉽다ㅜ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she). 여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프랑스 영화계에서도 좋아하는 배우다.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앞서 언급한 마리옹 꼬띠아르...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프랑스 영화에서 거의 이들 배우가 과점체제(?)를 굳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프랑스 배우들은 다른 유럽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어서 참 좋다. (정말 자연스럽다는 말밖엔!!) 줄리엣 비노쉬를 맨 처음 알게 된 게 <퐁뇌프의 연인>을 통해서였는데,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매력은 여전하다. 차이라면 어언 30년전 <퐁뇌프의 연인>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이 있었고, 지금은 정제된 매력이 있다는 점뿐.
영화 바깥 이야기가 길었는데, 전혀 다른 여건이 놓인 내가 이 나이든 중년여성 캐릭터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미요(줄리엣 비노쉬)는 말한다. '죽는 건 견딜 수 있어요. 하지만 버려지는 건 견딜 수 없어요.' 이 장면에서 어쩐지 마음이 먹먹했다. 사회적인 지위를 갖췄지만 모든 관계를 유실(流失)해 버린 한 중년여성. SNS 속 아바타를 빙의해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여성.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함으로써 모든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녀의 삶을 결정지었던 것은 나를 이어줄 무엇인가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슨 목적 또는 어떤 까닭으로 블로그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쳤는데, 어쨌거나 피상적인 인간관계조차 기를 써도 유지하기 어려운 요즘 같은 내 일상에 적잖이 울림을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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