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thing But일상/film 2019. 9. 22. 00:12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이런 광기(狂氣) 어린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해 만들어진 영화인데, 마지막에 영화가 끝나고 자막에서 메시지가 뜬다. 미국에서 50대 이하의 사망원인 1위는 약물중독이라고.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잦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약물이 이 정도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삶도 아닌, 죽음도 아닌...
티모시 샬라메 못지 않게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스티브 카렐. 그는 모든 의학적, 심리적 치료법을 동원해 아들을 약물로부터 구해내려 하지만, 어떤 이성도 논리도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약물의 세계였으니. 중독성을 동반하지 않는 향정신성 물질도 있다고는 하지만, 일단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약물임을 영화는 담담히 서술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데이비드(스티브 카렐)이 한 학부모 모임에 나간 씬이다. 약물에 중독된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흑인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자신의 자녀가 약물중독으로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이미 딸이 죽기 전부터 실은 자신이 딸을 애도(哀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약물의 폐해에 인간에 끼치는 영향, 인간이 '산 송장'이 되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브래드 피트를 마지막으로 스크린에서 본 게 언제였던가. 물론 그가 기획하고 연출한 영화야 꾸준히 있었지만, 배우로써 영화에 출연한 영화는 워낙 오랜만이어서 무척×100 반가웠다. (빅쇼트 이후 처음인듯?) 영화는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 가운데 선택과 집중을 탁월하게 해냈다. SF이지만 과하지 않고 마치 내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바라볼 수 있도록 연출되어 있다. 가령 달에 도착한 로이(브래드 피트) 등 뒤로 보이는 간판—<DHL>이며 <Subway>며—은 달이라는 미지에 일상적인 풍경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폭주하는 괴물처럼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소비행태가 지구를 벗어난 우주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의 글을 되새기며
인간의 달 착륙은 인류 역사의 진보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한나 아렌트가 매우 정확하게 짚어냈듯이 인식가능한 공간의 확대와 더불어 인간의 실존 가치는 왜소(矮小)해졌다. 세계관의 확장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매우 작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轉落)시켰고, 자아(自我)의 안과 밖을 분별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예전보다 인권(人權)에 대해 말하고 참여(參與)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환경은 급속도로 파괴되었고 빈부의 격차(국가간이든 개별 국가든)는 그 어느 때보다 골이 깊어졌다. 오늘날만큼 집단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각설하고, 외계 지적생물체의 발견으로 역사적 '진보'를 이루고자 하는 아버지 클리포드(토미 리 존스)의 시도는 자기파괴적인 파국으로 역전된다. 매우 탁월한 업무수행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심각한 회의(懷疑)에 빠진 아들 닉(브래드 피트)은 해왕성(Neptune)에 표류(漂流) 중이던 아버지와 조우하고,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광기어린 얼굴을 들여다보며 회의감의 밑바닥에 봉착한다. 그 끝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외연(外延)의 확장이 아니라 자신이 내포(內包)한 삶에 시선을 돌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래비티>와 <퍼스트맨>을 연상시키는 주제이기도 했지만, 미국 SF 영화답지 않게(?) 묵직한 느낌이 근사한 영화였다. 아이맥스로 더 큰 스크린에서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좋은 영화였다:)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다는 것 (0) 2019.10.16 LA에서 생긴 일 (0) 2019.10.13 편집적 영화감상 (0) 2019.09.06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0) 2019.08.08 긴장감(緊張感)의 앞면과 뒷면 (0) 201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