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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달 사이(間月), 간월재주제 없는 글/印 2019. 11. 26. 00:03
간월(間月), 달과 달 사이. 내 마음대로 붙여본 이름이다^—^ 막상 간월재에 올라가면 표지판에 간월(肝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되어 있기는 한데, 간월(澗月, 달빛 시냇물), 간월(看月, 달을 바라보다) 등등으로도 읽힌다니 부르는 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거다. 영남알프스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소한 작명이라도 필요했으니, 주말을 이용해 1박 1일로 다녀온 곳은 영남 알프스, 그 중에서도 울주와 양산에 걸쳐 있는 간월산~신불산이라는 곳이다.
언젠가 영남(嶺南) 알프스라는 말을 귀에 접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아주 짤막한 영상에서 드론촬영—드론촬영은 걷는 이의 시야각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된 간월재의 풍경에 매료되어 무조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단풍구경의 마지막 주간(週間)이라고도 하는 11월 2주차였고, 그 다음주에는 철도파업에 예고되어 있었던 데다 때마침 회사 업무가 한숨을 돌리던 차였기 때문에 더 미룰 수 없겠다고 판단, 무턱대고 KTX표부터 끊었다.
예고 없는 회사일—스마트하게 일하라는데 도대체 언제쯤 스마트해질지..—은 내 발목을 부여잡았고, 그럼에도 나와의 약속이라며 예매한 시간에 맞춰 울산으로 내려갔으나 딱 하나 까먹고 챙기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일기예보'였다. 이날 중부지방에는 비 예보가 있었고 남부지방에도 일시적인 비 예보가 있었던 모양인데, 나중에 간월재에서 하산하면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이날 울산 울주군 일대에 미세먼지 상태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간 울산까지 먼 길을 하니 2박을 해서라도 십리대숲과 태화강을 비롯한 울산지역도 두루 둘러보고 싶었는데, 대충 예상은 했지만 올렸던 휴가도 반납하고 1박 1일 억새구경을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원래는 <여행> 카테고리에 좀 더 정돈된 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印> 카테고리에 두서 없이 글을 남긴다. <印> 카테고리에 글을 남기려고 보니 올 한 해 한 번 도 글을 올리지 않아서, 사진을 위주로 기록을 남기려던 이 공간을 너무 방치해두었다는 생각도 든다.
올 여름에 다녀왔던 창녕의 우포늪과 교통을 비교하자면 단연 간월재의 교통(대중교통)이 훨씬 편리하다. 물론 결과적으로 목적지에 이르는 읍내버스는 창녕이나 울주나 2~3시간에 한 대씩 운행하고 그마저도 막차가 일찍 끊기므로 반드시 간월재가 우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시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비용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면 대구를 거점으로 이동했던 창녕이 보다 주머니부담이 덜했다. 나 같은 1인 여행객에게는 하루 묵을 숙박비를 아끼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대구역 일대에는 울산역 앞보다 저렴한 도미토리형 게스트하우스가 꽤 있다.
아침 열 시 울산역(통도사) 앞에서 읍내버스 탑승! (내가 인터넷에서 미리 알아놨던 시간표와는 20분 차이가 났다) 거의 실신상태로 잠을 자느라 중간에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탑승할 때까지만 해도 관광객이 꽤 되었고 하차할 때도 관광객이 열 명 즈음 되었던 걸 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많이 찾는 곳인 듯하다. 실제 산행로에 들어가면 관광객이 이보다 훨씬 많은데—아마도 나처럼 마지막 단풍구경을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리라—대부분이 자가차량을 이용해서 온 듯, 내가 하차했던 산행로 초입(주암마을 입구 또는 배내 통하우스)은 그야말로 주차대란이다. 11시쯤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을 했는데, 그때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이 절반 즈음이었으니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싶다.
왕복 4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가도 어느 정도 탄력이 붙고 나면 산행에 재미를 붙이게 마련이기도 하고, 준비가 허술했던 탓에 카메라는 챙겼지만 간식은 달랑 던킨 도넛에서 산 도넛 하나여서 중간에 휴식 없이 간월재까지 쭈욱 올라갔다. 사실 이날 내가 올랐던 신불산(神佛山)은 영남 알프스를 이루는 주요 다섯 봉우리 가운데에서 가지산(加智山) 다음으로 높은 산이기 때문에 그리 낮은 산은 아닌데, 그럼에도 왕복 4시간 여만에 주파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버스가 내려준 주암마을 자체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하간 이날 간월재에 도착하기 30분여를 앞두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실 간월재가 영남 알프스 억새의 대표관광지처럼 되었지만, 이 일대에는 간월재 말고도 억새밭이 여럿 있다. 출발지점이었던 배내(주암마을)에서 반대방면으로 재약산에 오르면 이보다는 작지만 억새밭이 펼쳐져 있고, 간월산에서 신불산을 잇는 능선을 넘어가면 더 큰 억새밭이 나타난다. 억새를 구경한 것은 아주 어릴 적 명성산에서 보았던 억새, 그리고 중학교 즈음 한강 하늘공원에서 보았던 억새가 전부이다. 때문에 간월재 입구부터 자욱하게 낀 안개는 대단히.....대단히...불청객이었다. 언뜻 보아도 이미 억새가 메말라 앙상하고 여기에 안개가 몰고온 습기가 달라붙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움푹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잠시 드론촬영된 영상에 나타났던 간월재를 떠올려본다-_-... 아마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셔터를 눌러대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희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희한한 것 맞다;; 게다가 카메라에 성에까지 낀 상태로 안개 가득한 풍경을 담다보니 이게 안개 때문에 흐린 건지 성에 때문에 흐린 건지도 모르는 상태에 이른...
아침을 도넛으로 부실하게 떼운 상태였기 때문에, 인터넷에 이미 많이 소개되어 있는 대로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나처럼 기대에 부풀어 온 관광객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았는데, 참 신기(?)했던 점은 이 궂은 날씨 속에도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다들 신나 있었고, 그런 쾌활한 분위기가 우중충한 안개 사이사이를 메웠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관광객들의 활기가 있었던 주말이기도 했고, 막상 안개가 짙다 뿐 산행을 하기에 너무 춥다거나 바람이 세다거나 비가 온다거나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여름철 돌풍처럼—2009년 소나기가 들이닥친 날 제주도 윗새오름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여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지도 않았을 터. 간월재 한가운데에는 널따란 데크가 있는데 휴게소에서부터 이어진 왁자지껄함 때문에, 신불산 산행로에 들어선 뒤에도 한참 동안 등 뒤로 사람들의 쾌활한 인기척이 밀려온다.
신불산 정상을 거의 눈도장 찍듯 짧게 둘러보고 다시 쉼없이 하산길을 재촉했다.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이제는 확연히 산을 오르는 사람의 수가 줄었는데, 그 중 꾀가 난 듯한 한 산행객이 간월재까지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냐고 묻는다. 20~3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기는 한데 올라도 갈대가 하나도 안 보여요 하고 답을 하면서, 순간 내가 갈대와 억새를 잘 구분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스친다. 이슬이 가득 껴 미끄러운 신불산의 암석들을 제외하고 하산길을 순탄했다.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리막길에서 부상이 더 잦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정상을 찍은 뒤 방심(放心)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을 마친 뒤 울산역으로 향하는 읍내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바로 맞은 편 배내 통하우스—이곳 산행객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곳인 것 같다—에 들러 시간을 묻는다.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는 40분쯤 남았으니까, 배차시간이 2~3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그래도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정류소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아쉬워, 가장 협소해 보이는 테이블을 찾아 커피를 주문한다.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버스에 올라타는 대로 곧장 서울역으로 향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이미 월요일 휴가를 반납해서 남은 여정에 대해 고민할 기회도 없는 나로서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겠구나 마음먹었던 것을 보면, 안개에 가라앉은 억새밭에 퍽 미련이 남았던 것인지, 되돌아가야 할 삶에 대해 초조함을 느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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