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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른 못(潭陽)주제 없는 글/印 2018. 3. 10. 22:16
아주 즉흥적으로 광주를 다녀왔다. 간만의 휴가를 이용해 그 동안 묵혀두었던 일들(치과 진료, 미용실 가기 등등)을 해치우고도 연휴가 이틀 남기에 그 중 하루를 할애해 광주를 다녀왔다. 목적지가 광주였던 것에 아무런 이유가 없던 것은 아니고, 그동안 말로는 얼굴 한 번 보자며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광주로 향했다. 광주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으로 이전에 왔을 때에는 광주를 전혀 둘러보지 못하고 잠깐 들르기만 했었다. 여하간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오전 열차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도착!
그냥 편하게 얼굴이나 보고 갈 생각으로 왔는데, 친구가 승용차까지 끌고 역에 마중나왔다;; 광주는 차 없으면 못 다닌다며..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으러 창평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국밥류를 좋아하는데, 광주에서 국밥 하면 창평국밥이란다'~' 그래서 나는 시내의 유명한 가겐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속도로 진입;; 알고보니 광주 시내가 아닌 근교에 있는 지역명이 창평이었다. 이날 날씨가 좋기도 하고 워낙 따뜻해서 초여름 날씨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뙤양볕 아래 창평시장 노점에서 잘익은 딸기를 팔던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든든히 점심을 먹고 우리는 죽녹원으로 향했다. 이날 이래저래 즉흥적이었던 것이, 무심결에 전남에서 여행한 지역은 순천밖에 없다고 했더니 죽녹원이 아주 가깝다며 죽녹원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잎이 돋아나지 않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가로질러 죽녹원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왜 담양 하면 대나무를 먼저 떠올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죽녹원에 이르기 전부터 차창 밖으로 군락을 이룬 대나무숲이 스쳐가곤 했는데, 죽녹원은 언덕 하나를 통째로 대나무가 뒤덮고 있었다.
대잎 아이스크림―맛은 녹차 아이스크림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을 하나씩 사들고 대나무숲을 거닐었다가, 정자에 앉아 수다도 떨었다가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막상 만나고 보면 만난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날 낮에는 일광욕도 하고 숲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 후, 무등산 자락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저녁에 또 다른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인데, 다음 약속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옛 전남도청사~ACC~유스퀘어에 이르는 길을 쭉 둘러보라고 드라이빙을 해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면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 특히 어리숙했던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그날 저녁에 만난 친구는 그런 친구였다. 생각은 많되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내딛을 용기가 없는 친구. 대학 시절 가깝게 지내며 밑도 끝도 없이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 했던 친구인데, 어쩐지 그런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때보다 좀 더 나이든 어른이 된 지금, 그 친구는 여전히 그 시절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한 것 같았다. 새삼 놀라울 것도 없었지만, 이번 광주행은 처음은 유쾌했으나 끝은 씁쓸하고 나 자신에게 솔직히 고백하건대 거북하기까지 했던 걸음이었다. 여하간 유쾌한 만남은 남겨두고.. 낮에 만난 친구가 말하길 보성이 그렇게 볼 만하다니 언제 기회가 닿는다면 보성을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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