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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오해와 사소한 이해주제 있는 글/Second Tongue 2020. 4. 3. 22:26
요즈음 야후 재팬을 자주 찾는다. 모리토모(森友) 사학 스캔들이 회자되던 때도 안 들어가던 야후 재팬을 찾는 건 코로나 때문이다. 원래 댓글 같은 건 읽지 않는 편인데, 요새는 야후 재팬에서 댓글까지 챙겨본다^-^;;(댓글이 의외로 고퀄임;;) 코로나 때문에 야후 재팬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나름 역내 경제규모가 큰 G7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만이 잠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론 G7 중에는 캐나다의 감염속도 역시 유럽국가들에 비해 그 확산세가 약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안 되는 나라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의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부터가 코로나로 인해 상당히 곤혹을 치르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야단법석을 떨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도 않은데, 감염 확산도 더디다. 유럽에서 경제규모가 큰 국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들을 중심으로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과 너무 대비된다. 일본이야말로 이들 유럽국가보다 중국과 무역으로 더 긴밀하게 얽혀 있는데 말이다. (경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해 감염확산 초반에 의도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택하지 않은 영국은 좀 다른 의미에서 확산세에 불을 지폈다.) 여하간 너무 이상해서 일본 동향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댓글 가운데 시선을 잡아끄는 형용사 하나가 있었다.
<可笑しい(おかしい; 오카시이)>. '이상하다'는 뜻이다. 사실 일본 사람들은 농담할 줄 모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재미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입에서 <可笑しい>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맥락에 따라서는 좀 다른 의미로 봐야 옳다. 그저 표현할 수 있는 수위가 <可笑しい>였던 것일 수 있다. 일본사람들은 정부의 안이한 대처(세대당 면마스크 2개를 제공한다든가, 검사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든가, 휴교안내를 명확히 안 한다든가)와 우왕좌왕하는 행정기관에 대해 可笑しい하다고들 말한다. 이쯤이면 '이상하다'는 것보다는 '말도 안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あり得ない(ありえない; 아리에나이), 飛んでもない(とんでもない, 톤데모나이) 같은 비슷한 뜻의 관용표현도 있지만, 여기서는 可笑しい 자체가 이미 그러한 의미(どうかしている; 어디가 어떻게 된 거 아냐?)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소 문어적인 出鱈目(でたらめ; 데타라메)나 상당히 구어적인 変(へん; 헨), めちゃくちゃ(메챠쿠챠) 같은 표현을 대신해서, 일본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可笑しい(おかしい; 오카시이)라는 표현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에둘러 말하는 일본인들이기에 그들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언어들과 비교해서 한국어가 일본어와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표현방식이 다르다보니 이해하기 쉽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悔しい(くやしい; 쿠야시이): 벌써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김연아 vs. 아사다마오 구도의 피겨스케이팅 대결은 겨울이 되면 그랑프리다 4대륙 대회다 뭐다 해서 몇 주 간격마다 돌아오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 아쉽다.) 한번은, 아마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에게 진 (싱글 점수가 워낙 안 좋아서 아깝게 진 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사다 마오의 한 표현이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바로 悔しい(쿠야시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각종 매체에서 앞다퉈 ‘분하다’로 번역하면서, 이를 두고 아사다 마오를 비꼬거나 비아냥대는 반응이 나왔다. 경우에 따라서 '분할 분(憤)’을 섞어 쓰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아사다 마오는 ‘괘씸하다, 짜증난다, 원래 내 꺼다’의 맥락에서 くやしい(쿠야시이)라는 말을 쓴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제 기사가 아닌 영상에 나온 아사다 마오의 표정을 봐도 그렇다. 그냥 ‘속상하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뉘앙스는 많이 달라진다. 일한사전에서 悔しい(쿠야시이)를 ‘분하다’로 정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번 역으로 사전적 정의를 내려보자. 우리말의 ‘분하다’는 일본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나라면 그 정도의 격앙된 감정을 말하고 싶다면 ‘腹立つ(はらだつ; 하라다츠)’ 또는 'ムカつく(무카츠쿠)'를 택할 것 같다.
스포츠에서는 선수든 팬이든 간에 종종 이런 감정 표현이 표출되는 게 흔하다. 다음과 같은 사례도 떠오른다. 어느 선수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일본인 선수가 있었다. 모든 국제대회를 통틀어 도핑 단속에 걸린 첫 일본인 사례라 한다. 그 때도 일본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말은 '許さない(ゆるさない; 유루사나이)다. 기계적으로 번역하면 ‘용서하지 않겠어'라는 의미다. 하지만 똑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다소 어색하다. 만화영화도 아니고 좀 문학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개인적으로 추측컨대 ‘가만 놔두면 안 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용서 않겠다는 표현을 쓴다. ほっといてはいけない(홋토이떼와이케나이; 놔두면 안돼)라는 표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을 써도 ‘가만 놔두면 안 된다’는 우리말의 느낌은 충분히 살지 않는다.
# かわいい(카와이):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여성들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 표현하는 감탄사가 조금 다르다는 점은 흥미롭다. 일본여성들이 꺅 탄성을 지르며 카와이를 연발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한국 여성은 보통 ‘예쁘다!’라는 형용사를 쓴다. 반면 일본 여성은 ‘かわいい(귀엽다)’는 표현을 쓴다. 각자의 언어에 두 개의 뜻을 다루는 어휘가 엄연히 따로 있다. ‘예쁘다’에 상응하는 ‘綺麗(きれい;키레이)’와 ‘かわいい(카와이)’에 상응하는 ‘귀엽다.’ 그런데 똑 같은 마음에 드는 대상물을 두고 한 쪽은 예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귀엽다고 한다.
호감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두 형용사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동의어는 아니다. 일본사람들은 보통 한국인의 시각에서 ‘우아하다’, ‘기품있다’라고 표현할 만한 것에 대해서 ‘綺麗(키레이)’라는 형용사를 쓴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성숙하지 않은 대상에서 매력을 발견할 때 ‘귀엽다’는 말을 쓰기 때문에, 일본인보다 사용범위가 좁다. 일본사람들은 ‘かわいい(카와이)’하다고 인식하는 영역이 넓은 반면, 한국사람들은 ‘예쁘다’고 인식하는 영역이 더 넓은 듯하다. 달리 말해, 이토록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도 미적 감관이 이만큼 다르다는 얘기일까.
# 언론 : 보통 기사 자체를 잘 안 읽기는 하지만, 회사와 관련된 경제면은 꼼꼼히 읽어보는 편이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에서 주요 뉴스를 간추려서 메인 화면에 올려놓은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 포털에서 골라준 뉴스들을 수동적으로 읽게 된다는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 한국과 일본의 언론을 비교해보면 일본의 언론이 한국보다는 더 사실 기반의 언론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 언론은 글쓴이의 주관적인 의견을 여과없이 끼워넣거나 잘못된 용어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는 일본이 좀 더 읽는 문화가 강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일본의 언론이 좀 더 냉철하다고 느끼는 건, 그냥 비교준거가 우리나라 언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언론은 구태의연하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정치면에는 "친(親)~”이라는 어휘가 정권을 막론하고 수시로 구사된다. 그런데 정작 그 정치용어는 전혀 검증된 것이 아니다. 몇몇의 의원들끼리 친구라는 얘기인지, 가깝다면 무엇이 가깝다는 건지, 이념적으로 가깝다는 건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건지 취미가 같다는 건지 읽는 사람은 그냥 추측만 할 뿐이다. 마치 정당정치를 패거리 정치처럼 묘사하는 이런 표현들을 언론이 앞장서서 씀으로써 정치혐오를 조장한다. 사람들은 ‘친(親)~’라는 접두어만 보고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때문이다. 보통 제목도 자극적으로 뽑기 때문에 ‘의원들이 어떤 법안을 구상하고 있다’라는 이미지보다 ‘어떤 녀석들이 일을 꾸미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반드시 정치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묘사는 언론 자신에게도 전혀 실익이 없다. 그런데도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아무런 자정 노력없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친(親)'이라는 말로도 호도가 안되니까 '진(眞)'까지 갖다붙였던 것처럼.
한편 일본언론도 괴벽(怪癖)은 있다. 이들에게는 일종의 관음증 같은 게 있다. 근래에는 특히 한국을 겨냥해 한국을 깎아내리기 위해 여봐라 기사를 쓴다든가, 반대로 한국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체 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일본은 역시 달라, 하고 아전인수하도록 유도한다든가, 대개는 교묘하게 서술하지만 적나라한 것들도 있다. 그런데 이웃나라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인식이 거의 비슷해서인지—중국정부와 언론은 신뢰하기 어렵고, 시민의식이 여전히 높지 않다는 인식—애당초 시시콜콜 중국을 겨눌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하다=_=(일본언론에서 중국을 다루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자, 수출규제를 무릅쓰면서 아베 총리가 했던 말이 '국가간에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인데 이 말은 우리나라한테는 그래도 신뢰를 기대했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BTS가 빌보드에서 수상을 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수상하는 것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는 모양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일본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분방하다. 아마도 과거사에서 책임질 것이 없다는 강력한 집단의식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일본은 가해자라는 인식 자체도 부재—오히려 원폭투하에 대한 피해의식이 크다—하기는 하지만, 우위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입장에서 힐끔힐끔 한국의 동정을 살핀다. 그러고는 때로 안심하고 때로 '분하게' 느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언론도 일본과 비슷한 정도로 외부의 시선이나 반응을 의식한다.)
앞서 표현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구구절절 서술했지만, 끝으로 하나 더 떠오르는 표현이 있다. 이건 미묘할 것도 없이 이견의 여지조차 없는 문제의 발언이다. <毛頭考えていない(もうとうかんがえていない; 모-토-캉가에떼이나이)>. 위안부 사죄문제를 두고 아베 총리가 한 발언이다.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국내 선전용으로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외교적으로는 그릇된 발언이다. 이런 이견의 여지 없는 말(明言)을 그것도 공공을 대표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늘 주의해야 하는 법이다.
* 이 글은 인터넷에서 기사와 댓글을 읽다 떠오른 주관적인 생각을 잡다하게 늘어놓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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