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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짧은 건 대어 보아야 안다주제 있는 글/Second Tongue 2020. 6. 19. 00:02
눈 코 입 目(め;메) 鼻(はな;하나) 口(くち;쿠찌)
피 땀 눈물 血(ち;치) 汗(あせ;아세) 涙(なみだ;나미다)
몸 마음 体(からだ;카라다) 心(こころ;코코로)
대부분의 일본어 표현은 우리말보다 길다. 그래서 똑같은 3분짜리 곡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가사의 의미는 우리말이 더 풍부한 편이다. 같은 박자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음절의 수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본곡을 우리나라에 리메이크하는 경우, 원곡의 가사까지 살린다고 하면 어딘가 휑하니 남는 리듬이 생긴다. 반대로 우리나라 곡을 일본에 소개할 때는, 표현을 축약하거나 의미 전달이 반드시 필요한 단어는 어쩔 수 없이 한 박자에 끼워맞추는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어느 방향으로 번안을 하든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뜻이 풍부한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단지 적은 수의 뜻이 담겼다고 해서 뜻의 무게까지 가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너 私(わたし;와타시) あなた(아나타)
우리 너희 僕ら(ぼくら;보쿠라) あなたたち(아나타타치)
그 그녀 彼(かれ;카레) 彼女(かのじょ;카노죠)
이런 경향은 인칭대명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보통 존재와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은 (엄마와 아빠만큼이나) 만국공통으로 아주 쉬운 발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점에서 일본어의 인칭대명사는 예외적인 케이스다. 다른 여러 방식의 인칭 표현들—僕(ぼく;보쿠), 俺(オレ;오레), 君(きみ;키미)—을 감안해도 특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칭대명사에서 파생된 소유형용사로 가면 더욱 두드러진다. ‘내 것’, ‘네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일본어로는 구어(口語)라 하더라도 최소 4~6개의 음절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발음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일본어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뿐 아니라 발음이 다양하지 않다는 언어적 특성은 불가피하게 많은 동음이의어를 동반하고, 이로 인해 일본어에서는 장음(길게 늘여 발음하는 것)과 단음(짧게 끊어 발음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진다. 오래전 교내에서 일본학생들의 학교적응을 도울 때, 함께 일하던 친구가 겪은 일화가 있다. 일본인이 허가증(許可証;쿄카쇼ー)을 받으러 왔는데 이를 교과서(教科書;쿄ー카쇼)로 이해한 친구는 잠시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장단음은 우리나라말에도 은연중에 남아있기는 해도, 막상 일본어만큼 확실한 장단음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였어도 충분히 같은 실수를 겪었을 것 같다. 그만큼 한국어로는 명확하게 발음의 차이가 드러나는 낱말들이 일본어 안에서는 다소 모호하다. 일본어가 히라가나, 가타카나와 더불어 한자를 병용(倂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글씨로 봐야 확실해지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다(愛する;아이스루), 느끼다(感じる;칸지루), 믿다(信じる;신지루)
사고(思考)하다(考える;캉가에루), 기억(記憶)하다(覚える;오보에루), 시작(始作)하다(始める;하지메루)
한편, (다른 맥락의 이야기로) 어떤 외국어를 일정기간 공부하다보면 몇 가지 신기한 발음이나 표현을 접하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 이때 특히 그 나라의 토착어를 눈여겨본다. 토착어는 그 나라의 문화를 뿌리깊은 면까지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있는 많은 한자어들은 필요에 의해 시점상 나중에 인위적으로 조어(造語)된 것들이다. 첨가(添加)된 말이다. 반면 옷, 밥, 집 같은 순우리말은 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낱말들이고, 그만큼 한국인의 삶에 본질적이라는 뜻이다.
한국인이 개에 느끼는 감정은 일본인이 고양이에게 갖는 감정에 비유되는 만큼, 각각의 문화권마다 생활 속에서 밀접하게 느끼는 정서는 미묘하게 다르기에 이는 말에도 드러난다. 충분히 반박될 여지는 있지만 아주 거칠게 이분화하면, 한국어는 정서적인 표현이 상대적으로 고루 발달되어 있는 반면 일본어에서는 형식 또는 추상 개념이 눈에 띄곤 한다. 보통 '알다'라고 통칭되는 우리 표현은 일본어에는 "しる/分かる"로 뜻의 깊이가 달라지고, '생각하다'라는 표현은 "思う/考える"로 층위가 갈린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의 '착하다', '밉다' 같은 성상(性狀) 표현은 막상 어느 외국어로도 대응시키기가 쉽지 않다. 언어라는 게 완벽히 깔끔하게 선을 그어가며 배울 수는 없지만, 이런 비교지점을 발견할 때 다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스토리라인을 만들거나 포인트를 짚어나는 동시에, 진부한 것들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묘미일 것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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