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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s, DELF B1주제 있는 글/Second Tongue 2019. 4. 12. 22:27
많은 일이 생각지 않은 순간에 일어난다. 막역(莫逆)한 대학시절 친구에게 결혼식에 와달라는 청첩(請牒)을 받고 일주일 즈음 되었을까, 입사동기의 퇴사 소식을 들은 것이. 최후통첩(最後通牒) 같았던 그 말이 귓전에서 가시기 전까지 마음에도 없는 격려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가, 늦은 밤이 되어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면접을 함께하고 합격소식을 나누고 그야말로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손아래 두 살 터울의 동기. 완결(完結)되지 않은 상실감(喪失感)이랄까. 학년이 올라가기를 앞두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서운한 초등학생처럼,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고백하지 못한 채 애틋한 마음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어린 소년처럼, 눈 앞으로 다가온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 마냥 곤혹스러워하는 내 모습에 놀라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초등학생도, 수줍은 중학생도 아닌 이미 오래 전 머리가 큰 어른인데. 늦은 밤 헤이리 마을에서 올라탄 버스는 유난히 속도를 냈고, 버스 차창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것은 처음에는 밤안개였다가 이윽고 소리 없는 눈물로 바뀌었다.
많은 일은 같은 순간에 섞인다. 올해는 유달리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뒤섞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느끼기 어려울 만큼, 하나의 순간이 미처 여물기도 전에 여러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사람은 이익보다는 손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대학시절 경영학 수업이 생각났다가, <想いは想いのままで、熱を失うだけ、あなたは帰る、あの日の場所へ、僕は僕の道へ(생각은 생각인 채로/열정을 잃어갈 뿐/너는 되돌아가지/그날 그 곳으로/나는 내 갈 길로)>라는 오래된 노랫말이 생각나는 내 자신이 정말 얼빠진 사람 같다. 왜 좋은 인연(因緣)은 오래가지 않는 걸까. 그저 상실감에 마비된 나머지 그렇다고 느끼는 것일 뿐일까. 오늘도 DELF B1 합격 소식을 듣고 잠시 기쁨이 찾아왔다가도, 곧이어 바쁜 일상에 신경이 쓰였고, 이내 다시금 내 생각을 사로잡은 건 가까운 친구가 곧 멀어진다는 무거운 상실감과 손쓸 새도 없이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 한 근을 도둑맞은 듯한 서늘한 기분, 그런 애틋함이었다. 소설이 그러하고 드라마가 그러하고 하나의 이야기 안에는 뚜렷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는 법인데, 우리의 삶에는 서로 다른 크기와 무게의 기승전결이 찾아오고, 그마저 결(結)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또 다른 기(起)가 열린다. 너무 많은 일들로 인해 어디 호소(呼訴)할 곳 없이 감정이 멎어버린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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