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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己×克時×克位=?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0. 4. 10. 12:02
#1. 점심식사를 마친 뒤였다. 아버지가 답답하다며 불쑥 자전거라도 타러 나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은퇴 직후 찾아온 코로나 국면에 활동적인 성격의 아버지는 일종의 도전에 직면하셨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황학동의 벼룩시장을 찾는 걸 무척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도 아버지의 성화를 못 이겨 한 번씩은 따라 가봤기 때문에, 황학동 벼룩시장을 가리키는 별도의 애칭을 달아놓았을 정도다. 시장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겠지만―청계천 따라서 가보시죠, 초콜렛 두 조각에 인스턴트 커피를 듬뿍 담아 가방을 꾸렸다. 얼마만에 타는 자전거인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지중해 연안을 자전거로 종주해보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한 포부로 사 놓았던, 그러고선 몇 번 타보지도 않은 접이식 미니벨로를 꺼냈다. 아버지는 얼마 전 예전 직장동료에게 받은 중고 자전거를 꺼내신다.
한 시간여 만에 황학동 벼룩시장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신다. 그러면서 아직 장이 예전만큼 열리지 않았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시장을 오가는 구경꾼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시려나 했지만, 이걸 보려고 한 시간을 자전거로 달려온 건가 싶을 정도로 그 길로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하기야 정말 아끼는 장소는 그 안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다. 나 또한 반드시 책을 사지 않더라도 수시로 발걸음을 하는 서점이 있다. 가끔은 걸어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기도 한다. 나만의 아지트다. 심지어는 우리집 강아지도 그렇다. 약간씩 산책루트가 달라지기는 해도, 오랫동안 뜸을 드리며 시간을 보내는 위치는 붙박이처럼 정해져 있다. 결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런 아지트를 마음 편히 왕래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2. 독립하려고 처음 셋방을 얻었을 때만 해도 세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보면 옵션도 참 열악한 집이었는데, 처음에는 침대 하나에 냉장고, 베란다에 둘 세탁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방 안에는 마음만 앞세워 사놓은 책들이 점점 수북히 쌓여간다. 그리고 또 하나 늘어가는 것이 있다. 바로 식물들이다. 홍콩야자 두 그루와 몬스테라, 선인장, 셀렘과 파비앙, 아스파라거스, 가장 마지막으로 들여온 알로카시아 한 그루까지. 홍콩야자는 모두 두 그루가 있었는데, 이 중 한 그루는 급격하게 시들시들해지는 걸 결국은 구제하지 못했다. 홍콩야자는 수경재배가 가능한 종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수경재배가 가능할 만한 목을 따서 물에 담근 뒤 볕이 잘 드는 위치에 놓았지만, 판단이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남은 홍콩야자 한 그루는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싱싱하고 대견한 건 몬스테라다. 대체로 키우기에 난이도가 높지 않은 종(種)들을 구하기는 했지만, 모두 다른 종이라 조금씩 성격이 다르다. 어떤 것들은 흙 자체의 수분보다는 공중의 습도에 반응이 빠른 종이 있다. (이는 셀렘이 그렇다) 어떤 것은 비료가 특히 잘 든다. (이는 홍콩야자의 경우) 어떤 것은 물을 주는 횟수보다는 한 번 줄 때의 적절한 양 조절이 훨씬 중요하다. (이는 파비앙의 경우) 단연 손이 가장 덜 가는 건 선인장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관리가 까다로울 때가 있다. 언제 마지막으로 관리했는지 수시로 까먹기 때문. 식물관리를 위한 달력이라도 따로 둬야 하는 건가 싶다. 식물을 많이 키워본 건 아닌데,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즐거움도있고, 꽃집에 가서 키우는 방법도 물어가며 소소한 재미가 있다.
#3. 살다 보면 멀어지는 인연들이 있다. 두 번 다시 안 보기로 마음먹은 인연들도 있다. 영 삐딱선을 타는 요즈음 내 마음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 기운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