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작은 균열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19. 10. 29. 22:08
# 내가 이토록 괴로운 것은 오로지 생각의 빈곤 때문이다.
# 우리는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나머지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어쩌다 죽음에 대해 떠올릴 뿐이다.
# 영화 속으로 도피해봐도 책 속으로 도피해봐도 그 어디서도 내 거처(居處)를 찾을 수 없다.
# 살다보면 나란 사람을 뒤바꿔줄 깨달음 같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연 당했을 때이든, 원하던 것을 쟁취하지 못했을 때이든, 가까운 사람과 갈등을 겪을 때이든, 내 안의 끝없는 결핍을 느낄 때이든,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때마다. 어쩌면 그 어떤 깨달음을 얻기에는 내가 아직 있는 힘껏 삶에 부딪혀본 적이 없는지도 모르지만, 요새 그런 생각도 든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
군대 동기인 형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고. 나는 코웃음까지 치지는 않았어도 내심 보란듯이 의미를 찾아보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알게 된 것은 깨달음에 매달릴 수록 더 나 자신과 멀어져버린다는 사실이다.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나는 구심력에만 이끌릴 수도, 원심력에 올라탈 수만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그때 그 형의 나이가 만으로 서른이었으니, 꼭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20대 청춘이 대개 그러하듯 멀게만 느껴졌던 나이에 내가 어느덧 걸쳐 있다. 나는 정말이지 나에게 걸맞지 않는 엇박자로 점철된 시간을 살아온 것 같다가도, 그래서 완전히 원심력에 몸을 내맡겨 나를 산산조각내고 싶다가도,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구심력으로 회귀해 삶의 평형을 맞추곤 한다. 평형을 유지하는 과정은 괴로움의 연속이기는 하나, 어떠한 깨달음에 대해 일말의 약속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많지가 않다. 시간도 기회도 공간도.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에서 균형추를 맞추는 것이 정말 내 삶이라면, 결국 내 삶에는 아무런 방향성이 없는 것이다. 항상 같은 자리로 되돌아올 것이기에. 하지만 어떤 궤도를 그릴 것인지는 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지금으로썬 아주 작은 균열을 바랄 뿐이다.'주제 없는 글 > Miscellaneo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이 아닌 말 (0) 2020.04.09 소모전(消耗戰) (2) 2020.02.14 A propos de moi (0) 2019.10.07 잊기 전 : 忙 그리고 忘 사이 (0) 2019.08.01 소립자가 되다 (0) 201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