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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 stand for you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0. 9. 30. 20:53
#1. 부모님과 동생을 동대문 시장 방면으로 보내고 나는 광화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종로5가와 을지로4가 사이의 오래된 가게에서 소고기를 사드리고 나오는 길이었다. 추석 직전이기도 했지만 원래 모임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는데, 몇 가지 의견이 안 맞아서 좀 어정쩡한 점심식사를 했다.
며칠간 이어진 두통을 누르며 걸음을 내딛었다. 한동안 청계로를 따라 걷는데 세운상가를 가로지른 이후부터 을지로 방면으로 고층 빌딩들이 한창 지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안 을지로 쪽에 높은 빌딩이 꽤 들어섰었는데, 계속해서 새 건물이 올라가는 모양이다. 활기가 사라져가는 도심을 새로이 개발하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건물의 파사드를 빈틈없이 채운 진부한 유리창을 보며 어떤 것이 정말 활력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수표교를 건너 점점 익숙한 풍경이 늘어갔고, 어느 경계에 이르러 그 풍경 안에 나를 감춰버렸다. 뒤이어 해가 저무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틀었을 때, 햇살을 맞받은 하늘이 조금 밝아졌고 하늘을 뭉텅뭉텅 도려낸 구름은 잔인할 만큼 새하얬다.
#2. 아마 신해철을 처음으로 알게 됐던 게, 중학교 3학년 고스트 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자정을 한참 넘긴 새벽시간에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당시 자정을 넘겨 라디오를 즐겨 들었었다. 고스트 스테이션은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틀어주는 음악보다 멘트가 많아서, 공부를 할 때는 이거 좀 방해된다 싶으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어서 막상 끄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가수 신해철보다 DJ 신해철을 처음 접했던 셈인데, 며칠전 하루는 신해철을 재조명하는 예능프로를 보았다. VCR 비디오테입 같은 예고화면 속 신해철의 웃는 얼굴이 너무 풋풋해서, 막연히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하는데 마침 해당 방송이 흘러나왔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사람 신해철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그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그가 사회적인 발언들을 쏟아내던 당시(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의 말이 반드시 정답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말’이냐 하는 것 역시 중요하므로. 그럼에도 발언의 취지에는 많이 공감한다. 남녀노소 불문 피아를 맹렬히 나누고 전투적인 언사가 난무하는 요즘 조금 회의감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말을 한다는 것은 크든 작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십수 년 전만 해도 사회적인 발언의 무게가 지금보다 좀 더 묵직했었고 쉽게 휘발되지도 않았다. 고스트 스테이션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도 정말 오래된 일인데, TV 화면 속 오래된 영상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의 부재가 느껴졌다.
#3. 긴장의 연속. 호흡을 가다듬고 써야 할 근육만 쓸 것. 생각은 말랑말랑하게 행동은 확실하게. 몇 가지 의미 몇 가지 목표에 함몰되지 않을 것.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해 또 한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 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 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 볼 수 있어 단 한 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주제 없는 글 > Miscellaneo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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