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종종 내가 버는 돈에 혐오감을 느낀다. 제법 값나가는 커피를 주문했을 때였던가, 완성된 커피를 앞에 두고 망연히 앉았다. 혐오스러워 하는 바로 그 돈으로 구매한 커피 한 잔. 멍하니 넋 놓고 바라보는데, 마시기도 전부터 혀가 텁텁해졌다. 갑자기 돈이 드는 모든 소비행위를 멈춰버리고 싶다. 끝내버리고 싶다. 근로라는 이름으로 소진되고 분쇄된 감정들, 조직의 벽에 부딪치며 빼곡하게 쌓인 체념, 누군가에 대한 기대치를 내던지는 나의 무기력한 모습. 불신. 그 안에서 휘저어 건져올린 돈. 시원한 우유를 비집고 퍼져나가는 에스프레소 샷.
얼마 전 퇴사를 건의했다. 평소 자기중심적이던 상사는, 막상 퇴사면담 때가 되자 더욱 자기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자기 뜻대로 돌아가야 안심하는 어린 아이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인이 감내해왔던 업무부담, 리더로서의 체면과 알량한 자존심만이 대화의 주제를 장악한다.
말이란 참 쉽다. 말은 실로 가벼운 것 이상이다. 가볍게 던진 말도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해독(解毒)할 수 없는 무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지만, 상사는 주워담지도 못할 말들을 쉬지 않고 쏟아낸다. 호우(豪雨)에 개방된 하천댐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퇴적물까지 거르지 않고 말을 토해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여기까지다. 세대의 차이인지 시대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골 깊은 생각의 간극을 여기서 끊어버려야 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구세계는 구세계대로 흘려 보내고 마음 속에서 말끔히 소각(燒却)해 버려야 한다.
칠월 천근만근 같은 초침도 결국 바늘의 위치를 옮길 수밖에 없다. 뒤이은 수차례의 면담. 처음 운을 뗀 뒤로부터 어느덧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지났다. 불가해한 일투성이였던 나날. 빗물을 받아놓고 시간이 흐르면 눈에 보이지 않던 앙금이 바닥에 가라앉듯, 퇴사를 결심한 이나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나 서로를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며칠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어떤 날은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말로 상대를 할퀴고 도려내는 공중전도 잠잠해져 간다. 이 장마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며, 사필귀정으로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기를, 매듭지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