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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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삶과 죽음일상/book 2021. 11. 20. 11:52
이번 달 들어서 읽은 두 번째 책이다. 번역도 잘된 책인데 처음 4분의 1정도를 읽고 그만 내려놓을까도 생각했다.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글에 프랑스사람들은 비유나 메타포를 많이 집어넣어서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서구 가톨릭이 동쪽의 비잔티움 문화권보다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게 된 이야기까지는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사실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눌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잔티움 세계 너머 유럽 기준으로 더 동쪽으로 가면, 그러니까 이슬람 문명에서는 마호메트에 대한 소묘나 조각이 엄격히 금지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그래서 회화보다는 캘리그라피나 모자이크가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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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일상/book 2020. 12. 20. 15:38
중고등학교 때 사회계약설이 나오면 로크, 홉스, 루소의 이론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채 두세 문장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는데, (정작 부끄럽게도) 이 세 인물 가운데 원전을 직접 읽어본 것이 하나도 없다=_= 과연 고전은 고전이라 불리는 까닭이 있는 모양이다. 루소의 은 누구나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의 경우 번역이 잘못 되면 읽기가 까다로운데, 이 책의 경우는 읽기가 어렵지도 않고 한국어 분량도 채 150페이지가 되지 않으므로 부담스럽지도 않다. 왜 여태껏 이 책을 집어들 생각을 못했는지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싶다. 유발 하라리의 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담고 있다. 비록 지금은 장 자크 루소가 17세기 유명 철학자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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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한 편, 역사 한 편일상/book 2020. 11. 20. 23:29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가이기도 하지만 여러 문학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의 실존주의 철학을 접하기에 앞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망설여졌다. 사실 사르트르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 뭔지도 잘 몰랐고,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그의 세계관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막연히 그의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중, 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로캉탱이라는 한 남성이 관찰하는 일상을 그린 이 글은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종잡을 수 없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단어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막연하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집어올린 조약돌 하나가 주인공 자신에게 구토감을 일으킨다는 소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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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일상/book 2020. 10. 31. 18:58
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늘 있는 어떤 확신이라든지 자명한 일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병에 걸리듯이 닥쳐왔다. 그것은 조금씩 음흉하게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 자신이 좀 괴이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뿐이다. 한번 자리를 잡더니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헛놀란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또 꽃잎을 열었다.—p. 15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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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의 글을 읽고일상/book 2020. 9. 5. 17:52
자크 데리다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남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길고 어려운 글이었기 때문에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글쓰는 것을 미뤄왔다. 이전에 미셸 푸코와 들뢰즈, 과타리의 글도 일부 읽어봤지만, 프랑스 철학은 참 난해하다. 바로 그 난해하다는 매력(?) 때문에 계속 글을 찾아서 읽는데, 『그라마톨로지』는 그에 비하면 난해한 편도 아닌 것 같다. 프랑스어로 된 원본이더라도 읽기 까다로웠을 것 같은 글이다. 역자도 이전에 한 번 번역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정리정돈을 했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매우 다양한 인물과 철학이 소개된다. 소쉬르,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 하이데거, 후설, 헤겔, 루소까지. 이밖에도 생소한 언어학자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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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와 정치주제 있는 글/<Portada> 2020. 9. 3. 21:10
Roland Barthes casse les clichés 롤랑 바르트 진부함을 벗어던지다 « Le courage de la nuance » (6/6). Contre la pensée dogmatique, certaines figures du XXe siècle ont incarné l’audace de l’incertitude. Pour lutter contre la tyrannie des stéréotypes, l’auteur des « Mythologies » s’en remettait à la littérature et au langage amoureux. (Le 28 août, 2020/Le Monde) (6/6편) 교조주의적인 사조에 맞서, 20세기의 어떤 인물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대담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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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마톨로지(Grammatologie)일상/book 2020. 8. 23. 00:25
이 제목 아래 어떤 생각을 품든 간에, 언어의 문제는 결코 여러 문제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만큼 그 문제가 있는 그대로 가장 다양한 연구들과 그 의도, 방법,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가장 이질적인 담론들의 세계적 지평을 침입한 적은 없었다. ‘언어’라는 낱말의 평가 절하 그 자체, 그 낱말에 부여하는 신용에서 그 어휘의 졸렬함, 헐값에 농락하려는 유혹, 유행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 전위의식(conscience d’avant-garde), 즉 무지, 이 점들 모두가 그 점을 증언한다. ‘언어’라는 기호의 인플레이션은 기호 자체의 인플레이션이며 절대적 인플레이션이자 인플레이션 그 자체이기도 하다. ―p. 41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그 역설은 다음과 같다. 자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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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타자일상/book 2020. 4. 8. 21:12
레비나스의 글은 처음이지만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삶에 서 큰 용기를 얻는다. 철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허풍잡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이래서 철학책을 찾는가보다 싶다.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글덩어리를 음미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활자는 크고 행은 여유가 있어 좋다. 아주 단출한 책인데 내용은 단출하지가 않다. ‘사유하는 존재서로의 인간’이라는 데카르트의 명제 이후 오늘날 현대철학은 인간 주체의 죽음을 고하기에 이르렀다고 역자는 잠시 짚고 넘어간다. 단, 레비나스의 글을 읽으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느꼈다. 존재의 부재가 단지 물리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인간은 존재에 가해지는 부재(不在) ―존재의 현현과 익명성 자체가 되어버린 존재 ―의 그늘 아래 인식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