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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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일상/book 2018. 10. 25. 19:07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레비-스트로스의 책을 읽고 나서 20세기의 마지막을 살았던 예전 사람들이 동시대의 우리보다 더 생각이 깊고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은 ‘스마트’다 ‘인공지능’이다 인간의 삶이 편리해졌지만, 반대급부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 같다. 오늘날의 우리는 심적인 여유를 갈망하면서도 길게 호흡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긴 문장을 기피하고 인간관계를 천천히 쌓아올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를 대신해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줄임말로 점철된 토막난 텍스트들과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유지이다. 레비-스트로스처럼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하나의 부족에 천착(穿鑿)하여 집요하고 끈질기게 탐구하는 태도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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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일상/book 2018. 6. 17. 23:55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시뮬라크르들의 自轉―심지어 영토를 만들어낸다. 오늘날에는 영토의 조각들이 펼쳐진 지도 위에서 서서히 썩어들고 있다. 지도가 아닌 실재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제국의 폐허가 아니라 우리의 폐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실재 그 자체의 폐허에 이른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지도나 영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렸다 : 추상의 매력을 낳았던, 어떤 것에서 다른 것 사이에 개재되었던 지고의 이 사라져버렸다. 지도의 서정과 영토의 매력, 개념의 마술과 실재의 매력을 낳는 것은 다름이기 때문이다. 지도와 영토를 이상적으로 일치시키려는 지도 제작자들의 광적인 계획 속에서 절정을 이루고 또 수그러든 재현적 상상 세계는 시뮬라시옹 속에서 사라진다. 이 시뮬라시옹의 작용은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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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일상/book 2018. 4. 4. 23:54
우리는 그림을 바라보고, 그림 속의 화가는 우리를 응시한다. 더도 덜도 아닌 대면(對面), 갑자기 서로 마주친 눈길, 서로 교차되면서 겹치는 곧은 시선, 그렇지만 이 상호적 가시성의 가느다란 선에는 불확실성, 교환, 회피라는 시선을 포괄하는 복잡한 망 전체가 내포되어 있다. 화가의 시선은 우리가 소재(素材)의 자리에 있는 경우에만 우리에게로 향한다. 관람자로서 우리는 추가 요소일 뿐이다. 우리는 화가의 시선에 받아들여지지만 또한 화가의 시선에 의해 축출되고 우리보다 먼저 언제나 거기에 있던 것, 즉 모델로 교체된다. 그러나 역으로 화가의 시선은 그림의 바깥으로, 화가와 마주 대하는 허공을 겨냥하는 것으로서, 관람자들이 오는 그만큼 많은 모델을 받아들이는 셈이며, 그 명확하나 중립적인 장소에서 주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