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
미망일상/film 2024. 12. 28. 11:08
많이 늦은 영화 리뷰, 미망.친구가 광화문을 좋아하는 나에게 추천해준 영화로, 모처럼 동행인이 있던 영화관람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극중 내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리한 광화문을 맴돌기는 하지만, 첫 장면은 옛 서울극장이 자리한 종로3가 일대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중에 서울아트시네마로 이름을 바꾸었던 서울극장의 텅빈 관람석에 대한 아늑한 기억과 함께, 비좁은 골목길 철물점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무심하게 주고 받는 남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계절은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가고, 인물들은 광화문과 종로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고, 누군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잊었다가 다시 떠올린다.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迷妄),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未忘), 멀리 넓게 바라보다(彌望), 그리고 ..
-
나의 가냘픈 날갯짓일상/film 2020. 2. 7. 21:05
올해 봤던 영화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단연 여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 그러하고 이번에 본 작품 가 그렇다. 작은 몸집의 벌새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정지화면 같지만, 이를 위해 벌새는 1초에 60번의 날갯짓을 한다. 마찬가지로 은희를 비롯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무수한 날갯짓을 마음 속에 띄운다. 느낌 또는 생각의 파동이 느릿느릿한 화면 속에 꽉 차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1994년 여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나는 영화 속 세대의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김일성 주석 사망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그 뿐 아니라, 아마 영화에 등장하는 은희나 지영 같은 인물에게..
-
권력을 쥔 순응자일상/film 2020. 2. 6. 00:40
모처럼 명절을 맞아 같은 기간에 개봉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바로 . 동생이 내일 우리 가족 다 같이 영화관 갈까? 하는 제안에 곧장 예매를 했다. 보통 명절에 부랴부랴 영화티켓을 예매하면 괜찮은 위치에 자리 네 개가 연달아 있는 경우가 드문데, 다행히 조금 뒤쪽이기는 해도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구했다. 명절이 확실히 영화관 대목이기는 한지, 영화관에 가까운 층으로 갈수록 주차하기가 팍팍했다. 역사적 맥락 안에서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 주인공을 스토리의 소재로 삼으면 어쩐지 부담스럽다. 예를 들어, 70~80년대 군부독재를 살아간 서울시민들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면 괜히 더 궁금하지만, 독재정권의 정점에 있던 대통령과 막후의 핵심인물이었던 중앙정보본부장, 경호실장이 전..